<나의 골프 이야기>태권도 격파式 임팩트로 300야드 거뜬… 입문 1년 안돼 싱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공명규 씨가 4일 서울 강남구 언주로의 한 실내연습장에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스윙을 선보이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쇼트게임도 발군 아르헨 프로로 전향… 베스트 스코어 9언더

태권도와 골프에 이어 탱고까지. 이 어울리지 않을 듯한 조합을 두루 섭렵한 공명규(56) 아르헨티나 홍보대사는 혈혈단신으로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태권도 사범으로 출발해 프로골퍼와 탱고 ‘마에스트로’까지 됐다. 그는 지금까지 ‘기왕 하려면 프로처럼 하라’는 좌우명으로 살아왔다.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그의 유일한 탈출구는 운동이었다. 복싱으로 출발했지만 너무 고단한 삶이 싫어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태권도를 배워 1980년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태권도 사범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했다.

유럽 출신의 이민자들이 아르헨티나의 모든 분야의 주류를 형성한 탓에, 태권도만 할 줄 아는 그는 주류 사회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그래서 골프부터 배웠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의 골프장이 200개가 넘었지만 모두 회원제였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흘간 상류층의 사교 모임은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이뤄졌다. 태권도로 성공하기 위해 골프를 배워야만 했던 그의 인생은 아이러니 자체였다. 군사정권 시절이어서 그곳의 육군사관학교 태권도 교관이 됐고, 점차 이름이 알려지면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태권도로 군부나 정계, 재계, 문화계 인사들과 교분을 틀 수 있었다.

그는 남들이 보고 있다는 생각에 골프 역시 적당히 할 수 없었다. 체육관에서 전신(全身) 거울을 보며 매일 자세 연습을 했다. 한번 빠져들면 혹독하게 훈련하는 그는 거의 매일 골프를 쳤다. 이 덕에 교민들보다는 현지인들과 먼저 골프로 친해졌고, 동양인이었지만 회원제 클럽에 입성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국내와 달리 아마추어골퍼들은 ‘핸디캡 증명서’가 있어야 라운드가 가능했다. 핸디캡을 기준으로 이븐에서 9오버파까지가 A클래스다. B(10∼16), C(17∼24), D(25∼36)로 갈수록 낮은 등급이다. 프로한테 6개월 동안 스윙은 물론 룰과 에티켓을 배운 뒤 기본적인 매너와 룰, 그리고 성적까지 인정을 받아야 골프장에 나갈 수 있었다.

그는 1년도 안 돼 ‘싱글핸디캐퍼’가 됐다. 태권도에서 얻은 근력과 근육, 힘쓰는 방법으로 남들보다 빨랐던 것이다. 골프 시작 1년 6개월 만에 1언더파 71타를 쳤다.

특히 300야드가 넘는 장타는 발군이었고,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어프로치와 퍼팅도 뛰어났다.

그는 아르헨티나 골프 아마추어 국가대표까지 될 뻔했지만 국적 때문에 포기했다. 태권도 교관이 남의 나라 국적을 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골프 배운 지 10년도 안 된 1989년 아르헨티나 프로로 전향했고, 1996년에는 아르헨티나 프로골프협회 상금 랭킹 6위까지 올랐다. 한번은 깡마른 체구에도 비거리가 너무 나가자 협회에서 그를 의심하면서 쓰던 공을 가져가 조사를 한 적도 있다.

그는 지금도 40대 때 쓰던 스펙(샤프트 75g, 로프트 8도)의 드라이버를 쓴다.

베스트 스코어는 9언더파 63타다. 아르헨티나 프로 대회에서 기록했다. 그의 장타 비결은 태권도 격파처럼 순간의 강력한 임팩트를 만들어 내는 것. 홀인원도 4차례나 해 봤다. 아르헨티나에서 세 번, 한국에서 한 번 기록했다. 첫 홀인원은 골프 시작 10년 넘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 펭귄골프장에서 오픈대회에 출전했다가 했다. 한국에서는 8년 전 경기 남양주시 양주골프장에서 기록했다. 이글은 너무 흔한 기록이지만 한 라운드에 3개를 뽑아낸 적도 있다.

그가 탱고에 빠져든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는 골프가 끝나면 식사나 술을 마시는 편인데 반해 아르헨티나에서는 라운드 후 파티를 열어 시상을 한다.

시상을 할 때면 으레 사람들은 탱고를 추면서 와인과 함께 즐긴다. 그 역시 탱고를 ‘춤’으로만 생각해 처음엔 여성과 손잡고 몸을 비벼대는 게 어색했다.

점차 탱고가 올바른 몸을 만드는 데 그 어떤 스포츠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권도 8단, 쿵후 8단인 그는 뭐든 하면 끝장을 봐야 만 하는 성격 탓에 탱고를 배울 때도 몇 배 노력을 쏟았다. 동양인 최초로 1996년 아르헨티나에서 탱고 마에스트로 자격을 획득했다. 아내에게 탱고를 배운다는 사실을 10년 이상 숨긴 탓에 의심도 많이 받았다. 아내가 ‘왜 이렇게 향수 냄새가 매일 바뀌느냐’고 할 때마다 “여러 사람 만나니까 그렇게 됐다”고 둘러댔지만 무대에서 공연한 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아내의 귀에 들어가 들통이 났다.

그는 탱고의 매력으로 바른 몸을 만드는 데 탁월한 효과를 꼽았다. 집중력을 갖고 음악 한 곡이 흐르는 동안 탱고를 추면 웨이트 트레이닝을 1시간 정도 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탱고는 힘의 분산, 즉 상체의 힘을 빼고 손을 통해 상대와 교감을 하기 때문에 튼튼한 하체가 필수라고 했다. 이 때문에 골프와 탱고의 공통점은 너무 많다고 한다.

우선 어드레스 때 상체의 힘을 빼고 엉덩이 밑으로 힘을 분산해야 하는데, 이때 하체는 나무뿌리처럼 튼실해야 한다. 하체가 부실하면 올바른 스윙을 할 수 없듯이 탱고 역시 스텝이 흐트러지면 춤을 망칠 수밖에 없다.

골프와 탱고는 올바른 감성으로 리듬을 타야 하고, 균형을 못 잡거나 몸이 구부정하면 힘이 들어가게 돼 보기 흉하다는 공통점도 있다는 것이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 공명규 골프 프로필

▲ 입문 = 1980년

▲ 비거리 = 270m

▲ 기록 = 베스트 스코어 9언더파 63타, 홀인원 4회

▲ 골프란 = 결론을 먼저 보려 하기 때문에 어렵게 만든다. 덤비면 슬라이스가 나고, 물로도 들어간다. 밥 지을 때도 쌀을 씻고 뜸을 들이듯 골프도 이런 준비 과정을 만들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