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현판 조각 90% 수습… 궁·능 긴급보수시 즉각 출동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명 ‘문화재 119’의 수리기술자가 지난 2008년 2월 숭례문 화재 당시 다 타버린 나무 기둥 위에서 정비 작업을 하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1년 써도 10년 같고, 10년 써도 1년 같은 게 명품이라면서요. 와편(瓦片·깨어진 기와 조각)으로 쌓은 곡장(曲墻·무덤 주위에 쌓은 나지막한 담)이 딱 그거죠. 그 기품과 운치하며…. 남은 기와를 가져다 쓰니 재활용도 되고. 다만 기와를 일일이 조각내는 절편작업을 거쳐야 하니까 전돌로 쌓을 때보다 손도 시간도 훨씬 많이 들죠.”

와편 담의 미(美)를 논하고, 수고스러운 작업 과정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전문가 못지않은 내공이 느껴진다. 30년 넘게 고궁과 왕릉 등 문화재 현장을 지키며 쌓은 식견이다. 문화재청 직영사업단의 양동호(61) 단장이다. 사업단이라고 하니 어째 아리송하다. 편의상 고리타분(?)한 이름을 쓰지만 ‘문화재 119’라는 별명을 듣고 나면 추리가 쉽다.

40여 명으로 구성된 직영사업단은 서울·경기 지역 궁과 능에 긴급 보수가 필요하면 즉각 출동하는 팀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일이 없도록 말이다. 지붕기와, 담장, 곡장, 석축, 배수로, 관람로 등 보수뿐 아니라 수목이식, 부폐목 수술 등 전통조경 정비도 도맡아 하니 말 그대로 ‘알토란’이다. 숭례문이 부실공사 논란에 휩싸이며 문화재계는 국민적 질타와 비난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일해온 이들까지 ‘도매금’으로 넘겨선 안될 터. 경칩이라는 절기가 무색하게 굵은 눈발이 날리던 지난 6일, 장대석(층계나 축대를 쌓는 데 쓰이는 긴 돌) 해체보수 작업이 한창인 창덕궁에서 이 ‘국보급’ 일꾼들을 만났다.

“그래도 숭례문 화재 후 열악했던 작업환경이 약간 나아졌어요. 예전엔 트럭 짐칸에 타고 다니며 일했는데, 당시 너무 춥고 눈이 많이 와서 사업단 전용버스가 생겼어요.”

최근 영동지방에 내린 폭설로 강릉 선교장에 긴급 정비를 다녀온 양동호 단장은 “숭례문 화재 때도 눈이 무척 많이 왔다. 영하 20도에서 까맣게 타버린 현판 부스러기를 줍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진척상황이 연일 보도될 때 언론은 숭례문 현판 조각은 90% 이상, 건재한 기존 목재도 50% 이상 찾아낸 것에 집중했다. 잿더미 속에서 현판 조각과 재사용 가능한 목재를 일일이 찾아낸 게 바로 직영사업단의 기능직·일용직 직원들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궂은일’이 주 업무다. 기능인의 서러움을 잘 알기에 이번 숭례문 부실공사 논란에 누구보다 마음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사업단의 한 건축원은 “흙으로 하는 공사는 매우 예민하다. 100% 잘할 수는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며 “같은 기능인 동료들이 수고한 공사라서 더욱 안타깝다”고 전했다.

사업단 직원들의 하루는 오전 7시부터 시작된다. 1년 365일 변함없다. 관람객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궁·능 깊숙한 곳에 임시 사무소를 마련하고, 새참을 포함은 4끼의 식사도 대부분 현장에서 때운다.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의 김성수(54) 직영사업단 담당자는 “관람객들이 없는 시간에 일해야 하고 또 늘 작업복 차림에 흙먼지가 묻어 있어서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 밥을 먹는 것도 힘들다”고 설명했다. 도제식으로 이뤄지는 기술 습득은 궁 밖 민간 문화재 수리기술자들과 다를 바 없지만, 일당으로 계산되는 보수는 되레 낮은 편이다. 다만 작업 건수가 연 250∼300건으로 꾸준하다는 게 장점. 그런데 낮은 보수와 알아주는 이 없다는 서러움을 날려주는 건 정작 따로 있다.

양동호 단장은 “관람객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정원이다. 관람로가 들어서지 않은 인적 드문 곳에서 만나는 야생화 혹은 야생동물들이 고단한 일상에 휴식을 준다”고 귀띔했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서울 창덕궁과 경기 구리의 동구릉을 꼽았다.

숭례문 공사 때 제공받은 버스를 두고 “1990년대엔 지게 지고 일했는데 이게 어디냐”고 기뻐하는 직영사업단 직원들. 분명 문화재계의 ‘빛과 소금’이다. 하지만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40여 명의 직원 중 20∼30대는 13명에 불과하다. 워낙 험한 일이다 보니 요즘 지원자가 거의 없다. 20년 이상 일한 기술자들을 다시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형국. 비교적 젊은(?) 단원인 김수년(42) 씨는 “문화재 수리를 하셨던 아버지를 이어 이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젊은이들이 태반이다”고 토로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