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DDP와 간송미술관

예진수/문화부장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전시가 열리는 봄·가을이면 동네 전체가 들썩인다. 관람객들은 대략 한두 시간 미술관 밖에서 기다린다. 정선, 김홍도, 신윤복, 김정희 등 이름난 작가의 진품이 나올 때는 3시간도 감수한다. 간송미술관은 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재를 수집하는 데 일생을 바친 간송 전형필(1906∼1962년) 선생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사립 박물관이다.

올 봄 간송미술관 소장품이 나들이를 한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디자인박물관에서 21일 개막하는 ‘간송문화-문화로 나라를 지키다’전(展)에서 간송 컬렉션의 입체적 면모를 볼 수 있다. 1971년 이후 봄·가을 두 차례만 간송미술관에서 열리던 전시가 너른 외부공간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러한 간송전시의 변화는 시대변화에 부응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최근 들어 간송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이 젊어졌다. 몇 년 전 혜원 신윤복을 다룬 TV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방영된 뒤 간송미술관은 젊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최근 수년간 관람객의 70%가 20대와 30대였고, 나머지 30%만이 중장년층이었다. 무엇보다 신세대들이 모여드는데 간송미술관의 협소하고 낡은 공간이 불편했다. 전시공간인 보화각은 1938년에 지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간송미술관의 봄 나들이는 반갑다. 간송미술관은 40년간 무료를 고수했다. 세련되고 널찍한 공간에서 전시가 열리는 만큼 이번 전시부터 유료가 된 것은 관람객들도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국보급 작품이 어깨를 마주하고 걸리는 DDP 전시공간의 조명은 작품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부분 조명이 아니라 일반 붙박이 조명이다. 고려청자 등을 볼 때도 빛이 반사되는 등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간송미술관의 대규모 외부 전시가 처음으로 열리는 DDP가 한국인의 삶과 역사를 오롯이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도 아쉽다. DDP의 스카이라인만 보더라도 이웃해 있는 주변 지역들의 ‘생활권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DDP는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섰다. 동대문운동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체육시설이었는데도 너무 쉽게 허물어 버렸다. 이 장소는 조선시대 훈련도감의 부속기관인 하도감이 있던 곳이다. DDP공사를 할 때 청계천 물길이 성곽 밑을 관통해 흘러가도록 만든 이간수문(二間水門)과 123m에 이르는 한양도성 성곽, 하도감 터 유적들이 나타났다. 물론 역사유적 보존을 위한 조치가 따랐지만 결국 DDP 건축은 강행됐다. 서울 성곽 안쪽에 있던 하도감을 성곽 밖으로 이전하고 그 터에 있던 유적들도 여기저기로 옮긴 뒤 터를 덮어버렸다. 유럽 도시들은 19세기 초에 운영되던 석탄광산까지 보존하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서울의 역사적 맥락마저 무시한 채 졸속으로 추진된 DDP 건립 과정의 후유증은 두고두고 이어질 것 같다.

DDP가 명실상부한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려면 이제부터라도 이 장소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재생하는 데 섬세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DDP를 운영할 때도 ‘우리 문화를 지키는 것이 민족혼을 수호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 간송의 정신을 깊이 되새겨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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