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롱 환자 잡는 ‘마디모’ 블랙박스 없어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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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박모(여·32) 씨는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에서 차를 몰다 택시와 접촉사고를 냈다. 박 씨는 곧바로 택시기사 노모(65) 씨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네고, 보험 처리를 권했다. 그러나 노 씨는 “괜찮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그런데 이틀 후인 4일 노 씨는 박 씨에게 전화를 걸어 “합의를 원하면, 차 수리비 명목으로 50만 원을 보내라”고 갑작스럽게 요구했다. 박 씨는 노 씨의 요구가 무리하다고 보고 거부했지만, 노 씨는 “차량수리비를 보내지 않으면, 뺑소니로 신고하겠다”며 맞섰다. 박 씨는 이날 바로 보험사에 사고 접수를 했고, 보험사는 노 씨의 차량을 수리해줬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노 씨는 경찰에 신고하고, 병원에 입원한 후 박 씨에게 “입원했으니, 치료비를 내라”고 요구했다.

사건을 접수한 서울 영등포경찰서 교통조사과는 박 씨의 진술 등을 참고해 경미한 접촉사고임에도 노 씨가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의심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마디모(MADYMO) 프로그램’ 활용을 의뢰했다.

최근 경미한 교통사고에도 뒷목부터 잡고 병원에 입원해 보험금을 뜯어내는 ‘나이롱 환자’를 잡는 ‘마디모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11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이 국과수에 교통사고로 인한 상해 사건에 마디모를 활용하기 시작한 2010년에 의뢰 건수가 32건에 불과했는데, 2011년 130건, 2012년 250건, 2013년 1250건으로 40배가량으로 급증했다. 또 올 1분기 동안 1500건을 기록, 지난해 의뢰 건수를 이미 넘어선 것으로 분석됐다.

경찰은 경미한 교통사고에 대해 마디모를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실제 경찰청은 지난해 9월 전국의 경찰서에 공문을 보내 “나이롱 환자 등을 가려내기 위해 경미한 교통사고 조사 시에 마디모를 적극 활용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마디모가 일선 경찰관들의 교통조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이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경미한 사고 때 무리한 요구 시 유용한 마디모 프로그램’이란 글이 급속히 퍼지면서 이 프로그램의 유명세는 더 확대되고 있다.

박종찬 국과수 교통사고분석과장은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블랙박스 영상 없이도 사고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며 “횡단보도 내에서 차가 보행자를 친 것인지 횡단보도 밖에서 친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마디모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다”고 말했다.

◆ 마디모(MADYMO) = ‘MAthematical DYnamic MOdels’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네덜란드 응용과학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교통 상해사고 감정프로그램이다. 국내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도로교통공단에서 이 프로그램을 활용, 교통사고 당시 노면(路面) 흔적, 차량 파손 상태, 동영상 등을 토대로 교통사고 충격이 탑승자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경찰에 제공하고 있다. 대형사고는 물론 경미한 교통사고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손기은·김다영 기자 s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