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국회선진화법’ 반드시 폐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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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새누리당이 16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현행 국회법의 개정을 당론으로 채택해 추진키로 했다. 2012년 5월 25일 발효된 국회선진화법은 몸싸움과 단상 점거 등 국회 내의 폭력사태를 방지한다는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국회를 사실상의 ‘식물’ 상태로 전락시켰다. 지난해 박근혜정부의 정상적 출범을 한 달 이상 지체시켜 국정 운영의 공백이 빚어진 데도, 각종 민생 및 경제 활성화 법안은 물론 2014년 예산안의 처리가 지연된 데에도 이 선진화법이 작용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회법을 다시 개정해 국회의 입법 기능을 회복시키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국회선진화법은 안건조정 제도, 직권상정 제한 및 안건 신속처리 제도, 예산안 본회의 자동 부의(附議),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폭력국회 방지 및 처벌 등 다섯 가지 주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안건조정 제도와 직권상정 제한 및 안건 신속처리 제도, 그리고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는 국회의 의사결정 체계를 재석의원 과반수의 동의에서 사실상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로 바꾸는 결과를 초래했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반대 동의를 얻은 소수당은, 이보다 다수지만 재적의원 5분의 3에는 미치지 못하는 찬성표를 지닌 다수당을 저지할 수 있다. 또, 신속한 처리가 요구되는 사안에 대해서도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지연시킬 수도 있다.

그 결과 의석의 3분의 1 이상을 확보한 소수당은 동의의 대가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맞교환 형태로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다수당이 이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국회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식물국회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박 대통령 당선자 시절부터 시작된 국회 내 여야 간 힘겨루기가 이어지면서 국회는 파행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9월에 시작된 정기국회의 경우 민주당의 장외투쟁과 상임위 보이콧으로 3개월 간 안건 처리는 시도조차 불가능했다. 이후에도 예산안과 특검법안 등을 연계하는 패키지 딜이 요구되면서 예산안은 헌법상의 처리시한인 12월 2일을 훌쩍 넘긴 새해 첫날에야 확정됐다. 이 와중에 외국인투자촉진법 등 각종 경제활성화 및 민생 법안은 처리가 지연되거나 숫제 이뤄지지 못했다.

이전의 국회법에서는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을 경우 의장의 직권 상정이라는 우회 장치가 있었다. 하지만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은 국회선진화법에서는 사실상 봉쇄돼 있다. 물론 의장의 직권상정이 몸싸움의 계기가 된 경우가 허다했지만, 식물국회보다는 동물국회가 차라리 나았다는 이야기가 공연한 것만은 아니다.

이처럼 국회선진화법은 소수 의견의 보호를 넘어서 소수의 합법적 횡포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개정돼야 한다. 하지만 이 법의 통과를 주도한 새누리당이 입장을 바꿔 재개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2012년 당시 당내의 상당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법을 밀어붙인 지도부, 특히 황우여 대표의 공식 사과가 필요할 것이다. 그 다음 야당의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순서가 맞다.

하지만 이미 꼬리로 몸통을 흔들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를 손에 쥔 야당이 쉽게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국회에서 법 개정이 어려운 경우 위헌소송 제기까지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헌법정치경제학의 대가로 198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즈 뷰캐넌은 국회법과 같은 의사결정의 ‘규칙’을 정할 때는 보통의 안건과는 달리 절대다수나 만장일치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2012년 당시 국회선진화법은 재적의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27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재석의원의 단순 다수결로 재적의원 초다수(supermajority)의 찬성이 필요하도록 의사결정 규칙을 변경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