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세월호 빌미 ‘규제개혁 후퇴’ 안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안재욱/경희대 교수·경제학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위축된 소비를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 9일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재정을 조기에 집행해 2분기 재정 집행 규모를 7조8000억 원 늘리기로 했고, 여행·운송·숙박업 등 매출 피해가 심해진 업종에 대한 지원책을 내놨다. 이 같은 대책은 당장 피해를 보는 업체들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갑작스러운 매출 감소로 수입이 크게 줄어든 업체들에 종합소득세·부가가치세의 납부 기한을 연장해주고 체납액에 대한 처분을 일정 기간 유예해주는 것은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책으로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가 다시 살아날지는 의문이다. 지금의 소비 침체는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에 빠져 집단적 경제활동을 자제하는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학여행은 물론 지자체의 문화·축제 행사가 취소되고 기업·단체의 연수와 세미나 등이 잠정 중단되거나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관광·레저 활동이 중단되고 직장의 회식마저 끊겨 호텔·백화점·전통시장과 전국 여행지 식당들이 한산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돈을 푼다고 해서 경제활동이 살아나기는 어렵다.

경제활동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 각자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식당과 가게들이 손님들로 북적이고 사업체들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물론 이웃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같이 슬퍼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되고 사회 전체가 침체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것이 우리가 언제까지나 슬픔에만 잠겨 있을 수 없는 이유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관련자들이 저마다의 원칙과 규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다. 국민 모두가 이번 참사를 교훈 삼아 각자가 원칙과 규칙을 지키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은 규칙을 잘 지키며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 공무원들은 국민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정치인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좋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도 일상으로 돌아가 대한민국을 안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데 진력해야 한다. 실종자 수색구조 작업을 치밀하게 진행하면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시스템을 다시 점검하고 대책을 세워야 함은 물론이다. 이번 참사와 한국경제의 장기침체는 정부가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만들어낸,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규제들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수많은 규제로 인해 부정부패가 늘어나고, 편법이 난무하고, 무사안일·적당주의·형식주의가 만연하게 됐다. 국민이 아닌 공무원이 갑(甲)이 돼 버린 사회에서 감독기관과 공무원이 해운사의 잘못된 관행을 외면한 결과 이번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고, 정부의 촘촘한 규제로 인해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져 오늘날 장기침체를 겪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경제에 깊숙이 개입한 결과로 초래된 적폐(積弊)를 없앰으로써 앞으로는 세월호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 무엇보다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일은 규제개혁이다. 그런데 요즈음 수상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몇몇 정부 부처가 안전을 빌미로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규제개혁에서 빠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안전 시스템을 바로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세월호는 규제가 없어서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사건이고, 규제가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피해 가려는 행위들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본질을 왜곡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규제개혁은 어느 모로 보나 우리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