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1촌이 행복시대 이끈다>평생 밭일에 허리 고장… 물리치료 받으니 ‘시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2일 전북 고창군 대산면 농업인센터에서 농협중앙회가 목동 힘찬병원과 함께 ‘농업인 행복버스’ 의료봉사활동을 펼친 가운데 어르신들이 의료진의 문진을 받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전남 목포를 향해 달리다 영광나들목에서 내려 10여 분만에 도착한 전북 고창군 대산면. 지난 2008년, 대산·성송농협이 합병되면서 ‘대성농협’으로 명칭이 변경된 지역이다. 대산면 매산초등학교 옆 대산농업인 센터에서는 지난 12∼13일 이틀간 서울 목동 ‘힘찬병원’의료팀들이 주축이 된 봉사팀이 무릎 관절 통증과 허리 척추 질환에 시달리는 70∼80대 농민들에게 약물 처방에 물리치료까지 시행하는 ‘대성농협 농업인 행복버스’ 행사가 펼쳐졌다. ‘농업인 행복버스’는 한국마사회가 후원하고 농협중앙회가 주최해 몸이 아파도 제대로 진료받지 못하는 농촌 의료 사각지대 농민들을 상대로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법률상담과 ‘장수사진’(영정사진)까지 촬영·제작해주는 프로그램으로 마련됐으며 당초 문화공연 프로그램까지 4분야로 구성돼 있었지만 세월호 사건으로 침통한 국민들의 정서를 감안해 시끌벅적한 문화공연 행사는 취소했다. 농협중앙회는 올 한해에만 이 같은 ‘농업인 행복버스’행사를 50여 차례로 기획했다가 역시 세월호 사고 여파로 일정이 지연돼 거의 6개월이 다 지난 현재 겨우 10번째를 맞이했다.

의료 봉사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대산 농업인 센터 입구 쪽, X-ray촬영 버스가 노인들의 무릎 관절을 촬영해 영상으로 전송하면 의료진이 통증의 원인을 분석하고 처방까지 내려주는 모습이 분주했다.

‘문진’이라는 팻말이 서 있는 책상 앞에는 번호표를 손에 꼭 쥔 할머니 할아버지 10여 명이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아픈 곳이 어디죠. 귀가 잘 안들려. 어디가 가장 아프냐고요. 어∼엉, 가장 아픈디는 허리이고 무릎이제.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한 10년 훨씬 넘었어.”

힘찬병원 간호사들은 봉사활동 첫단계인 ‘문진표’ 작성단계에서부터 귀가 어두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소통에 애를 먹었다. 대성농협 조합원인 이들 노인들에게는 양파 수확에 모내기까지 한창 바쁜 농번기지만 ‘서울 큰 병원 의사들이 봉사활동을 왔다’는 말에 일손을 놓고 이곳을 찾았다.

성송면 계당리에 산다는 김형순(76) 할머니는 “밭 200평에 깨와 콩농사를 짓는데 서울에 사는 아들·딸 나눠주고 나면 아무것도 없다”며 “1000평쯤 되는 밭에 옛날 같으면 수박도 심고 땅콩도 심어 돈벌이가 짭짤했는데 늙어서 몸이 안 따라주니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대성농협 행복버스’는 이날 하루에만 300명의 조합원들을 진료했다. 13일까지 70세 이상 조합원 600명에게 혜택이 주어졌다.

살아온 세월만큼 무릎관절과 허리의 통증이 쌓여 고통을 호소하는 조합원이 대부분이다. X-ray촬영 영상을 들여다보던 이상훈 과장은 “무릎이나 허리 통증은 오래된 고질병으로 조기치료하면 큰 고생 안해도 될 텐데, 경제적으로 어렵고 대도시 큰병원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대부분 고통을 참고 넘기는 사례가 많다”며 “의료기술 발달로 인공관절 수술도 통증 없이 가능한 시대여서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수술하는 게 노인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무릎 관절 상태의 협착이 심한 경우 ‘인공관절수술’을 권하지만 대부분 임시방편으로 통증약만 처방해 달라고 한다며 이럴 땐 물리치료를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의 말처럼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은 ‘물리치료’였다.

적외선 치료기와 간섭파 전류 치료기 등 10여 개의 최신 물리치료 장비로 30여 분 동안 치료를 받은 노인들은 안색이 환하게 바뀌었다.

귀가 어두워 간호사들과 소통에 애를 먹었던 강순명(87) 할머니는 “(물리치료를 받으니) 허리도, 무릎도 가볍고 ‘참 좋다’, 찌릿찌릿한 고주파 치료기에 따뜻한 온열 치료기까지 치료를 받고 나니 온몸이 녹아내리듯 편안해진 상태로 잠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진 ‘장수사진’코너도 빼놓을 수 없는 인기 프로그램. 사진 촬영 전 의료팀과 함께 내려온 젊은 미용사들이 할머니들의 얼굴에 가볍게 화장도 해주고 립스틱도 칠해주며 드라이어로 머리까지 손질한 뒤 한복까지 차려입자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할머니 고개 조금만 이쪽으로…좋아요, 좋아. 잘 찍혔어요.”

서울 서초구에서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김천용 실장은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고 뻣뻣한 할머니·할아버지들과 씨름하며 “‘좀 더 온화하고 부드러운 얼굴’로 ‘사진’을 찍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부안 지소 소속 법무관이 직접 상담해 준 ‘법률 자문’에서는 ‘농촌 재산권’문제와 ‘가족법’자문이 주류를 이뤘다. 12일 하루만 열린 법률 상담에 8명의 노인이 고민을 털어놨다. 한편 힘찬병원은 충북 보은군(18∼19일)을 비롯해 경북 성주군(25일)과 강원 양양군(27일)에서 찾아가는 농업인 행복버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고창 = 박팔령 기자 park8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