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댐건설 찬성” vs 前청장 “기정사실화 말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국보이자 세계유산 잠정목록인 반구대 암각화의 부분 모습과 카이네틱 댐(가변형 투명 물막이) 시설의 개념도(작은 사진).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유산 잠정목록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한반도 선사시대 사냥 모습을 알 수 있는 이 귀중한 그림은 아이러니하게도 연중 6개월 넘게 물 속에 잠긴다. 1965년 울산지역의 공업·생활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축조된 사연댐의 물 높이 때문이다. 10여년간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문화재 보존 vs 식수원 확보’라는 대립된 논리로 인해 갈등을 빚어왔다. 지난해 경질된 변영섭 전 문화재청장은 재임기간 중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지난해 6월 울산시와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카이네틱 댐(가변형 임시 물막이) 건설을 추진했으며, 현재 이 댐은 안전성 여부 증명을 위한 실험을 준비 중에 있다.

그런데 자리에서 물러난 변 전 청장은 본인이 MOU 체결을 승인한 카이네틱 댐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주목된다. 변 전 청장은 최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검토한다는 것이었지, 댐 건설 자체가 결정된 게 아니었다”며 “아직 실험 착수도 안 한 댐 건설이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또한 “발견 40여 년 만에 반구대 암각화 주변지역이 발굴에 들어갔다. 공룡 발자국이 수십 개 발견되었는데, 선사시대 암각화와 공룡발자국이 함께 존재하는 곳은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 이런 곳에 댐 건설은 용납할 수 없다”며 반구대 암각화를 둘러싼 상황이 MOU 체결 당시와는 크게 달라졌음을 강조했다. 변 전 청장은 숭례문 부실공사 논란으로 경질이 되었고, 또 카이네틱 댐 관련 MOU도 본인 재임기간 중 체결됐다. 그는 “실험이 시작되는 마당에 이제 와서 댐 건설 반대를 표명하면 비난을 살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지금이 암각화 보존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막으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 관련 학계에서는 국보이자 (잠정) 세계유산으로서 상당한 가치를 지닌 반구대 암각화를 물 속에서 건져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울산시민의 의견을 배제한 채 ‘보존 논리’만을 주장하는 건 비윤리적이기 때문에,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 것.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한 한 국내 연구자는 “유로 변경, 생태 제방 등 그 동안 여러 가지 대안이 마련된 것처럼 이번 카이네틱 댐도 검토안 중 하나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합동분과를 꾸린 문화재위원회에서도 아직 카이네틱 댐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데에는 확신이 없는 것 같다”며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전에 울산시가 제안한 ‘생태제방’이 훨씬 환경적이고 현실적이라는 목소리도 높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문화재위는 여러 차례 카이네틱 댐 건설 심의를 보류했다. 지난 1월 문화재위 건축분과는 “물막이의 한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실천계획과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검증계획이 없다”며 보류조치했고, 2월에는 “물막이 존치기한의 구체적 목표치 및 사전검증실험에 대한 검증평가단을 구성하라”고 요구했다. 3월 합동분과위원회에서 이 안건을 다시 심의했으나, 물막이의 안전성을 위해 사전 실물모형을 통한 사전검증테스트 실시를 요구하며 보류조치한 바 있다.

그러나 문화재청의 입장은 MOU 체결 이후부터 한결같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카이네틱 댐 건설 추진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일부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공룡발자국 발견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데, 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의미있는 게 아니어서 댐 건설 중단에 고려사항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최종 결정은 문화재위가 승인해야 하는 것이므로, 그 결과에 따른다는 방침”이라며 “다만, 올해 여러 번 심의가 보류돼서 올해 안에 실험에 착수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카이네틱 댐 건설과 사전 실험은 선진엔지니어링(대표 함인선)에서 맡는다. 업계에 따르면 이 실험은 암각화 주변과 비슷한 환경을 찾은 후 모형 댐을 짓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최소 20주가 넘게 걸린다. 따라서 연내 심의를 위한 결과물을 도출하기도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한편, 울산시는 최근 반구대 암각화와 두동면 천전리각석(국보 제47호) 등 대곡천 암각화군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24시간 감시체계를 구축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