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맨투맨에 강한 분”… ‘교황 입맞춤’ 횟수 몇번?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축복 17일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충남 서산시 해미순교성지를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당에 입장하며 한 어린이에게 축복을 내려주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4박5일의 방한 기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이들을 축복해주기 위해 카퍼레이드 중 몇 번이나 무개차를 세우고, 또 몇 명의 아이들에게 키스하는지 세어보려고 했다. 나름대로 야심찬 계획이었지만 얼마 안 가 ‘참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 30명쯤 센 뒤 더 이상 숫자는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저 ‘교황은 아이들이 눈에 보이는 대로 수없이 차를 세웠다’는 표현이면 족할 듯싶다.

교황은 경호원이 안고 온 아이들을 볼 때면 언제나 흐뭇하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을 최대한 마주치려 했으며, 볼과 머리에 키스를 했다. 손가락을 빠는 아이 입에 자신의 손가락을 물려주기도 했다. 아직 젖을 떼지 못한 듯 보이는 아기들은 때때로 이국적인 외모의 낯선 ‘할아버지’가 무서웠는지 울음을 터트렸다. 교황도 난감한 듯 웃었다. 하지만 곁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지금은 놀라 울지만 자라면서 큰 힘이 될 거다’란 혼잣말을 했다. 자신의 앞날을 축복해준 이는 다름 아닌 ‘프란치스코’였으니 말이다.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이처럼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여줬다. 교황의 ‘20년지기’ 문한림 아르헨티나 산마르틴교구 보좌주교가 “교황은 맨투맨에 참 강한 사람”이라고 했던 말이 자주 떠올랐다.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의 주교, 추기경 시절에도 한 명, 한 명과의 만남을 중요시했다고 한다. 특히 그가 강조했던 것은 아무도 찾지 않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의 스킨십이었다.

교황은 한국에서도 16일 충북 음성 꽃동네 희망의집에서 장애인 등 꽃동네 가족 150여 명과 만날 때 유독 참석한 모든 이들과 1대1로 인사를 나누려 했다. 성인들과는 악수와 포옹을 하고, 아동과 신생아들에게는 키스로 축복을 보냈다. 인사를 하는 데만도 5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저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한 이가 바짝 옆에 다가와 위로와 안부를 보내는 것이다.

경청과 눈맞춤, 키스, 포옹 같은 친근함이 교황의 몸에는 배어 있는 듯하다. 이는 우리와 같은 높이에 있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낸 것이다. 그가 몸에 지닌 소품들도 그렇다. 주교 시절부터 착용한 철제 십자가 목걸이, 허름한 검은 구두, 직접 든 검은 가방, 금도금을 한 어부의 반지 등은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상징이 됐다. 해외 방문 때는 78세의 고령에도 비즈니스석을 이용하고, 그 나라의 작은 국산차를 타려 한다. 권위주의와 특권의식을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물질주의 풍조와 경제 불평등 현실에 대한 비판, 공동선의 추구 등 그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그의 행동으로부터 먼저 온다. 신자와 비신자를 떠나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도 이 부분이다.

과거 교황은 “내가 아는 유일한 언어는 몸의 언어”라고 말했다. 자신의 생각을 행위로 그대로 옮기고 철저히 몸을 낮춰 사람들과 개별적인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명의 종교지도자에 대해 한국 특유의 ‘쏠림’, 특히 미디어의 열광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있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지만, 교황 신드롬이 벌어지게 된 우리 사회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며 ‘위대한 지도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 그리고 하나의 답을 얻었다. ‘지도자가 더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임하려 할 때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더욱 더 높게 올라간다’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잊고 살았던 사실이다.

유민환 문화부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