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선언’ 말뿐… 출판기념회 빙자 ‘음험한 로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다짐해놓고… 지난해 9월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신학용(오른쪽 네 번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출판기념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검찰이 정치인의 출판기념회 수익금을 입법 로비 창구로 정조준하면서 국회의원들의 변칙적 정치자금 조달법으로 지적됐던 출판기념회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여야는 정치혁신의 ‘단골 공약’으로 출판기념회 제도 개선을 외쳐왔지만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로 매번 무산돼 왔다. 관련한 ‘국회의원윤리실천특별법’은 지난 4월 국회 운영위원회에 상정됐지만 이후 운영위가 이 법안을 논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문화일보 2012년 7월 24일자 1·3면 참조)

여야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출판기념회 투명화를 약속했지만 모두 ‘반짝 다짐’에 그쳤다. 새누리당은 지난 1월 당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정치자금법을 회피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히면서 관련 준칙을 만들어 공개한 바 있다. 이 준칙은 출판기념회를 임기 중 연 2회로 제한하고, 국정감사·정기국회·예산국회·선거 임박 시점에서는 행사를 개최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참석자 동원은 500명 선에서 제한하고, 화환은 받지 않으며, 의원이 소속 상임위원회 관련 단체나 기관에 초청장을 보내는 행위도 금지토록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관련법까지 발의하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 2월 당시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정가 판매, 수입·지출 선거관리위원회 신고 등을 담은 ‘국회의원윤리실천특별법’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입법화 전까지 새정치연합만이라도 자발적으로 실천하자는 다짐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에 박지원, 주승용 의원은 예정된 출판기념회를 취소하며 ‘솔선수범’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그때뿐이었다. 여야 대표들의 약속과 달리 내부 반발로 입법화 등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당시 법안을 만들면서 출판기념회를 아예 금지하거나, 적어도 당 윤리규정에 포함시키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당 내 반발로 무산됐다”며 “부족했던 부분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국회 운영위의 한 위원은 “국회 정치 현안에 묻혀 논의할 기회가 없었다”며 “정치후원금 제도 전체를 놓고 논의해야지 출판기념회 문제만 놓고 이야기하는 건 너무 포퓰리즘적”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스스로도 출판기념회의 부작용을 잘 알면서도, 제도 개선에 집중하기보다는 여론을 의식해 ‘보여주기식’ 약속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유야무야되는 사이 의원들은 ‘아직은 합법’이라는 인식 아래 마치 축의금을 받듯 정가 이상의 ‘책값’을 받는 출판기념회를 열어왔다. 특히 지방선거와 전당대회 등을 앞두고 의원들의 출판기념회 러시가 이어졌다. 광역단체장 선거에 출사표를 낸 정진석 전 국회 사무총장, 이낙연·김진표(새정치연합), 홍문표(새누리당) 의원 등은 2∼3월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새누리당 전대 출마자였던 김태호·김상민 의원도 6월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하반기 원구성이 이뤄진 시점을 이용해 전·현 상임위 관련 단체들을 ‘노린’ 의원들도 있었다.

한 초선 의원은 “동료 의원들이 봐도 심한 사람들이 있다”며 “상임위 교체기에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전 상임위 유관기관, 후 상임위 유관기관에 연락을 싹 돌린 의원도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서울에서 한 번, 지역에서 한 번 같은 책으로 두 번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한다. 목적이 뻔하지 않으냐”고 말하기도 했다.

윤정아 기자 jay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