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官治금융으론 ‘선진금융’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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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경희대 교수·경제학

최근 발생한 KB금융 사태는 관치(官治)금융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그대로 드러냈다. 표면적으로는 전산 시스템 교체를 둘러싸고 벌인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간의 갈등이 불거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고질적 문제인 관치금융이 자리잡고 있다.

관치금융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십 년 간 사라지지 않는 적폐다. 관치금융의 뿌리는 경제개발을 위한 금융 체제에 있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 정부가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논리로 정부가 금융기관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은행장 및 은행 임원의 임면을 주도했고, 금리를 규제하는 것은 물론 은행의 업무를 통제했다.

이 부작용을 인식한 정부는 1980년대부터 금리 자유화 등 일련의 금융 자유화 조치를 취했지만 관치금융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관치금융의 형태가 명시적인 형태에서 암묵적인 형태로 바뀌었을 뿐이다. 관치금융의 정당성이 입증되지 못하고 그 폐해가 속출하자 이제 건전성 감독이라는 명분 아래 금융기관의 운영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관치금융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은행에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은 은행과 은행지주회사에 지배주주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동일인 주식 소유가 10%로 제한돼 있고, 비금융 주력자는 4% 이상을 보유할 수 없다. 이 소유 제한은 은행과 은행지주회사의 소유권을 널리 분산시켜 은행에 실질적인 주인이 없게 만들었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인 은행에 수많은 규제와 금융 감독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정부가 금융회사에 압력을 가한다. 주인이 없는 은행은 그 압력을 거부(拒否)하기 어렵다. 그뿐 아니라 주인이 없다 보니 은행의 입장에서도 정부의 규제와 감독에 바람막이가 될 수 있는 ‘힘’ 있는 사람이 회장이나 은행장으로 오기를 바란다.

소유주가 없는 은행에서 대리인 문제와 관치가 복합돼 나타난다. 주인이 아닌 경영자는 은행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며, 시장의 변화보다는 자신의 임면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나 정치권에 시간과 노력을 더 기울인다. 이는 곧바로 생산성 하락을 초래한다.

KB금융지주는 정부가 단 1%의 지분도 갖고 있지 않은 사기업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금융지주회사의 인사를 좌지우지한다. 그러다 보니 권력의 이동에 따라 금융지주회사의 회장과 은행장이 바뀌고 회장과 은행장들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그로 인해 금융 당국의 제재를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경영이 잘될 턱이 없다. 자연스럽게 순익 1위였던 국민은행이 순익 최하위로 추락했다.

금융에서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은행이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은 정치권과 정부에서 철마다 내놓는 메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관치금융 상황에서 그것은 공허한 구호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도 소유자가 투자·개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혼신을 기울여 노력한 기업가 정신의 결과다. 실질적인 소유자가 없어서 대리인 문제와 관치가 복합돼 나타나는 금융산업에서 그런 기업가 정신을 기대하기는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진정 발전시키고 싶다면 먼저 은행에 실질적인 주인이 나타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는 수많은 규제를 혁파해 정부가 규제와 감독을 명분으로 금융산업에 개입하는 관치금융을 청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융산업의 발전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이며,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가 은행의 경영에 간섭함으로써 발생하는 스캔들을 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