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예술가 ‘인간 이중섭’… 삶과 열정 다시 그리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중섭의 1954년작 ‘도원’. 바다와 땅, 복숭아꽃과 열매를 배경으로 네 명의 아이들이 등장하는 통영시절의 작품이다. 돌베개 제공

이중섭평전-신화가 된 화가 그 진실을 찾아서 / 최열 지음 / 돌베게

‘국민화가’ 이중섭은 1916년 9월 16일 평남 평원에서 태어나 1956년 9월 6일 서울 서대문 적십자병원에서 세상을 떴다. 그는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에 고향 평남 평원을 떠나 평양, 정주, 원산, 도쿄(東京), 서귀포, 부산, 통영, 진주, 마산, 서울, 대구 그리고 다시 서울로 열 곳이 넘는 도시를 떠돌았다.

사십 평생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했던 이중섭의 삶과 예술은 미술계를 넘어 전설이 되었다. ‘이중섭 신화’가 증폭되고 확장되는 한편, 그의 삶과 작품 연구에 대한 아쉬움도 적지 않게 제기되어 왔다. 그럼에도 이중섭전에는 관람객이 몰렸고, 제주에 이중섭미술관이 들어섰다.

9월에 태어나 9월에 눈을 감은 이중섭, 그의 평전이 때맞춰 9월초 출간됐다. ‘미완의 천재화가’ 혹은 ‘가족과 떨어져 불행한 삶을 살았던 고독한 예술가’. 신화의 주인공으로 세인에게 각인된 이중섭 생애에 다가서기를 시도한 이는 미술평론가 겸 미술사학자 최열 씨다. 그는 이중섭 관련 문헌 500여 종 등 기존 자료를 선별하고 당대와 지역에 대한 기록을 더해 인간 이중섭의 삶을 치밀하게 재구성해냈다.

저자는 “이중섭이 떠난 지 반 백년이 훨씬 흘렀지만 전설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중섭의 신화를 재조명한다. 저자가 열일곱 무렵, ‘이중섭 유작전’과 ‘한국근대미술 60년전’에서 처음 만난 이중섭의 ‘들소’ 그림의 감동과 충격은, 40년 후 두툼한 한 권의 전기로 결실을 맺었다. 저자는 4∼5년 만에 완성한 이중섭평전을 지난 6일 이중섭 기일에 서울 동쪽 끝 망우리의 이중섭 묘소에 바쳤다.

이 책에선 평양 유력자 집안의 외손자로 못하는 운동이 없고 노래도 잘 불렀던 이중섭이 미술에 빠진 성장기부터 일본 유학시절과 귀국 후 미술활동 등을 상세히 펼쳐냈다. 고구려벽화를 비롯해 피카소와 루오의 강한 묵선에 영향을 받았던 젊은 날의 일화도 생생하게 묘사됐다.

이중섭이 일본서 같은 학교 여학생과 사랑에 빠져 1945년 해방 직전 원산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았던 시절, 전쟁 후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낸 뒤 줄곧 고독과 외로움 속에 살면서 그림 하나 붙들고 살았던 이중섭의 일생이 당대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저자는 작품이 화가의 생애를 통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를 분석적으로 보여준다. 화가가 살았던 지역과 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즐겨 그렸던 소, 가족, 어린이, 풍경, 은지화 등 작품에 대한 분석이 더해진다.

저자는 이중섭의 생일을 제국미술학교 기록을 토대로 일부 자료의 4월 10일에서 9월 16일로 바로잡는 등 추측과 상상이 더해진 이전의 일부 기록을 보완했다. 또한 제주도와 통영에서 체류 기간도 각기 11개월, 6개월로 바로 잡았다. 또 이중섭이 자신의 은지화가 1956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됐다는 소식에 “내 그림 비행기 탔겠네”라고 했다지만 실은 이중섭이 소장사실조차 모르고 세상을 떠났다는 점도 밝혔다. 이중섭은 1956년 9월 6일 서울적십자병원에서 눈감았을 때 ‘간장염으로 사망한 무연고자’로 분류돼 영안실에서 이틀 동안 홀로 있었다. 죽은 지 사흘 후 지인들에게 알려져 장례를 치렀다.

이책에서 특히 관심을 모으는 부분이 이중섭 사망 후를 기록한 책 후반의 ‘외전(外傳)’이다. 저자는 이중섭과 오랜 세월 교우해온 구상 시인의 1976년 증언, 1986년 호암갤러리 이중섭 30주기전과 2005년 삼성미술관 리움의 이중섭드로잉전 등의 발표글을 토대로 이중섭의 유작을 500∼600점으로 추정한다. 사후전시인 1972년 현대화랑의 이중섭 회고전, 1986년 호암갤러리 30주기전의 전시작 등 350여 점의 이중섭 작품을 소개하는 한편, 이중섭 문헌 150종의 목록 및 이중섭과 관련된 인물 자료도 제공한다.

“이중섭의 경우 작품보다 드라마틱한 생애 때문에 과대평가돼 왔다”는 등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이중섭의 삶과 작품세계를 생생하게 되살려낸 역작이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