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대한민국 갈등 리포트>‘慘事’ 끼어든 정치… 이념 대립 → 총체적 갈등 ‘확대 재생산’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제대로 된 구조활동조차 하지 못해 순식간에 300여 명의 사망·실종자를 낸 사고 탓에 정부에 대한 원성이 높아졌고, 6·4 지방선거를 거치는 과정에서 세월호특별법 제정 요구와 결합하면서 복잡하고 다층적인 ‘한국형 사회 갈등’으로 확대 증폭돼 왔다. 특히 ‘외부 세력 개입과 이념투쟁화 - 유언비어 살포와 무차별 상호비방 등으로 인한 편가르기와 대립 격화’란 ‘한국형 갈등 전개 공식’이 대입되면서 유족과 선사 간의 초기 단선적 갈등이 진보단체, 여야 정치권, 정부, 일반 국민까지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형 갈등으로 악화됐다.

◆이념과 합쳐져 입체적 갈등으로 = 24일로 162일째를 맞는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갈등 양상은 시시각각 변해왔다. 사고 초기 세월호 선사에 집중된 유족과 국민들의 원성은 황당하기까지 한 구조체계와 부실한 관리감독 실태가 드러나면서 정부로 향하기 시작했다. 해양경찰이 소극적 구조 자세로 ‘골든 타임’을 놓친 사실과 선박 운영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해운조합에 해양수산부 퇴직 관료가 취직하는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로 인해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실태 등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나면서 정부에 대한 유족 및 국민들의 불신과 비판이 폭발한 것이다. 또 검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를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세월호의 실제 주인으로 지목하며, 유 전 회장이 속한 ‘구원파’라는 종교단체와 정부와의 갈등이 추가되기도 했다.

6·4 지방선거를 거치며 이념을 달리하는 정당 및 시민단체가 결합되면서 갈등 양상은 더욱 다층화됐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가 진보단체, 야당 등과 함께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기소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한 데 대해 정부 여당과 보수단체 등이 ‘헌법이 규정한 3권 분립 및 자력구제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대하면서 양 진영 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특히 여당의 양보로 정치권에서 타협안을 마련했으나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반발하고 야당 내부의 강경파가 극력 저지에 나서면서 갈등 해결의 과정이 돼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갈등을 확대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류석춘(사회학) 연세대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갈등을 학문적으로 범주화하기 쉽지 않다”며 “비극적인 단순한 사고인데, 정치·사회적 이념이 주입되면서 갈등으로 확대 재생산된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한국형 갈등 전개 공식 그대로 =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갈등은 ‘외부 세력 개입과 이념투쟁화 - 유언비어 살포와 무차별 상호비방 등으로 인한 편가르기와 대립 격화’란 한국형 갈등 전개 공식을 어김없이 따랐다. 특히 외부 세력 개입으로 사안의 본질은 사실상 뒷전으로 밀리고 이념적 투쟁이 현안의 외피를 쓰고 전면에 부각되는 등 갈등 양상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장 등 지식인 150명은 지난 4일 지식인 선언에서 “세월호 참사가 정치 투쟁에 이용되는 사태를 경계해야 한다”며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일부 진보단체의 의견에 영향받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신율(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세월호 참사는 원래 정치적인 이슈가 전혀 아닌데 정치적인 세력들이 결합되면서 통제불능 상태의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이미 정치적 이슈가 돼버리면서 세월호 갈등은 풀 수 없을 정도로 얽혀 버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갈등이 증폭된 측면도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희생자에 대한 ‘의사상자 지정’, 참사 유가족 등의 공무원시험 가산점 부여 등 사실과 다른 내용이 SNS를 통해 전해지면서 유족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오해가 깊어졌다. 또 하나의 갈등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재열(사회학) 서울대 교수는 “SNS 등 다양한 소통 수단을 통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재난 방지 방법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잘못을 지적하는 ‘비난의 정치’만 가득한 실정”이라면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고 대책을 논의해야 할 자리에서 오히려 갈등만 난무한 것은 우리 사회 대부분을 개조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잘못된 갈등 해결 방식도 화근 = 광화문광장에서는 유가족들의 단식농성을 비판하며 ‘일간베스트 회원’(일베) 등이 폭식 시위를 계속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경제 살리기가 우선’, ‘광화문광장을 시민 품으로’ 등의 명분으로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여는 것 자체를 비난하기는 어렵지만,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극단적인 희롱과 조롱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갈등 해결 방식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면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이 이뤄지기 어려워 갈등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김영수(사회학) 서강대 교수는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슬퍼했던 세월호를 둘러싼 갈등이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된 근본 원인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기 때문”이라며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그 속에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 사회의 보수든 진보든 자신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만 소통하고 공유하다보니 양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측면이 있다”며 “진영을 떠나 서로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이 모든 갈등을 풀 수 있는 기본이자 단초”라고 말했다.

고서정 기자 himsg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