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삶을 바꾼다>“인문학 널리 접하게”… 文·史·哲강연 ‘한국판 TED’ 만든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북도립 칠곡공공도서관이 지난 6월 14일 경북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의성김씨 내압마을 종택에서 진행한 ‘공공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호국의 다리 너머 전쟁의 기억을 더듬다’에 참가한 학생들이 독립운동가 김동삼·김대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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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정말 위기일까. 인문학 관련 서적이 전체 발생종수의 30%에 육박하고, ‘정의란 무엇인가’ ‘상상력 사전’ ‘피로사회’ 등 베스트셀러의 상당수를 점하는 것도 인문학 관련 책이다. 대중을 위한 쉽고 흥미로운 역사, 철학 강연이 늘어나고 인문학자가 스타가 되기도 한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 그 자체만 보면 한국사회는 지금 ‘인문학 열풍’이다.

그럼에도 저마다 ‘인문학의 위기’를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인문정신의 위기’다.

한국은 압축적 성장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지만, 물질주의·경쟁·양극화 심화로 국민행복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는 사회적 신뢰 저하로 이어지는데, 이를 회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인문정신문화가 부상했고, 자연스럽게 인문학 강좌 등에 대한 민간의 수요가 증가한 것. 또, 현 정부는 국정기조인 ‘문화융성’의 근간을 인문학으로 설정, 2013년 10월에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인문정신문화 특별위원회(이하 인문특위·위원장 유종호)’를 출범시켰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길 위의 인문학’ =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장관 김종덕)가 가장 주안점을 둔 것 중 하나는 ‘인문학의 생활화’. 2010년부터 시작된 ‘길 위의 인문학’은 이를 계량화해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도서관과 박물관을 인문·정신문화 가치 확산의 거점으로 설정하고, 지역 주민들이 강연과 독서·탐방을 하면서 인문학적 상상력과 인문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했다.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도서관은 2013년 121개관(594회, 20억 원)에서 2014년 180개관(1080회, 40억 원)으로, 박물관은 65개관(1501회, 10억 원)에서 80개관(3000회, 20억 원)으로 늘었다. 문체부에 따르면 2013년 ‘길 위의 인문학’ 참여자 만족도 조사결과에서 88%가 재참가 의사를, 89%가 주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의사를 보였다.

현재 ‘길 위의 인문학’은 전국적으로 뻗어있다.＜표그래픽 참조＞ 인구 및 기존 도서관과 박물관 개수에 차이가 있지만 지역 주민의 문화 향유 기회가 전방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도서관협회의 방용식 공공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본부 홍보팀장은 “역사와 문화, 예술을 현장 속에서 체험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제에서 조선·전통에서 미래까지 = 도서관·박물관을 거점으로 하는 프로그램 주제는 다양하다. 딱딱한 인문학이 아니다.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문화유산인 왕릉 등 문화유적 탐방과 역사기행, 한의학의 새 발견, 다문화와 통일시대 대비, 건축, 영화, 미술, 자연생태 등 생활 속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또 역사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정도전과 세종대왕, 정조 등과 관련된 프로그램도 봇물이다.

프로그램은 보통 강연과 탐방이 짝을 이루고 있어 새로운 독서문화 형성과 함께 이웃 간 소통 증진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인문학 그리고 이와 연계된 프로그램들이 확산되면서 지역공동체를 복원하는데에도 일조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연내 진행될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에는 보다 지역화, 개별화된 프로그램들이 눈에 띈다. 만 60세 이상, 다문화 가족, 장애인, 지역아동센터 교사, 딸을 둔 30∼40대 여성, 10대 후반∼30대 초반 청춘남녀 등 참가자를 특화시킨 것인데, ‘렌즈로 바라본 아시아 이야기’ ‘딸과 연애’ ‘천년고도 목사마을로 떠나는 힐링 인문학여행’ 등 전문적이면서도 일상 속에 파고들어 갈 만한 인문학 강연과 탐방이 즐비하다.

◆문화콘텐츠 창작자 인문역량 강화 과제 = 올해 취업포털이 구직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8%가 “인문소양을 키우는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따라서 지역 속으로 파고드는 도서관·박물관 거점 정책과 별도로, 인문정신문화를 전시·영상·대중매체 등으로 콘텐츠화해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문체부는 오는 11월 ‘인문정신과 창조경제 국제콘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인데, 이곳에서 전통 인문자산 전문가와 콘텐츠 창작·제작자 간 네트워킹을 지원한다.

해외 사례를 적극 벤치마킹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의 테드(TED·강연, 칼럼 사이트)는 롤모델이 될 만하다. 문체부에서는 한국판 테드, 즉 ‘온라인 인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데, 전국의 인문 관련 프로그램, 인력풀, 공간 등 종합정보 제공으로 민간의 자생적 인문활동 활성화 지원을 병행할 예정이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