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젠 아동학대도 범죄로 처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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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현 / 한양대 교수·정신의학

30여 년 전 정신과 전문의로 아동학대 관련 세미나를 준비할 때 얘기다. 실태 파악을 위해 전국의 소아과 의사들에게 진료 중 부모에 의한 아동폭력을 경험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를 묻는 설문지를 발송했다. 당시 아동학대를 먼 외국의 일로 막연히 생각했던 필자는 답변을 보낸 500여 명의 의사 중 부모로부터 폭행을 당해 사망한 아동을 경험한 의사가 6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30년이 지난 현실은 어떠한가?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접수되는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매년 1만여 건에 이르고, 2013년 학대로 인한 아동 사망 건수도 22건이나 되는 등 아동학대 범죄는 우리 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울산사건, 칠곡사건 등 잔혹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잇달아 발생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경악하게 했다.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학대 예방과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아동학대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과 조기 발견 및 신속한 개입의 한계 등으로 인해 피해 아동 보호에 어려움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동학대를 외부의 개입이 필요 없는 순수한 가정 내 문제로 치부해 온 게 사실이다. 부모는 자녀가 잘 되도록 한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녀들에게 체벌의 명목으로 폭력을 행사해도 무방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와 명분을 들더라도 아동에 대한 폭력과 학대는 엄연한 범죄행위다. 학대 행위는 대상 아동에게 신체적 손상은 물론 일생을 통해 치유하기 힘든 정신적 상처를 남기게 된다. 또한 학대를 당한 아동이 자라면서 학교 폭력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성인이 돼서도 폭력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1977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여대생 3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세계 최초로 다중인격장애(해리성 정체장애)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던 빌리 밀리건. 그의 자아가 분열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동학대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계부로부터 가학적인 성적 학대에 시달렸던 밀리건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인격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이후 자신의 본래 인격을 포함한 다양한 연령대와 성을 가진 24개의 인격으로 분열됐다. 여러 인격이 상황에 따라 빌리의 의식을 차지하고 활동하면서 수차례 강간과 무장강도 등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고종석·김길태·김수철 등 최근 수년 간 발생한 극악한 아동 성폭행범들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어릴 적 부모와 사회로부터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아동학대는 범죄의 근원이 될 수 있으므로 아동학대의 대물림을 끊고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일은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투자라고 할 것이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아동학대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오는 29일부터 시행된다. 정부가 아동들에 대한 학대예방 및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게 된 것이다. 이제는 선진국의 사례에서와 같이 자녀를 몇 대 때리거나 무심하게 방치한 일로 경찰이 출동해 부모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광경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법 시행 과정에서 여러 가지 마찰이 불가피하겠지만, 아동학대가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부모가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보다는 모범을 보이고 타이르는 등의 대안을 찾고, 아이들에게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30년 후쯤에는 젊은이들이 “아동학대가 뭐죠? 예전에는 그런 일이 있었나요?” 하고 묻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다시 강조하면, 아동학대는 범죄이며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