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산업 신화’ 소니 몰락… 왜 ?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히라이 가즈오 소니 사장이 지난 17일 일본 도쿄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배당 결정을 발표하면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표류가 멈추지 않고 있다.”

“반전의 실마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일본 기술력의 상징이자 세계 전자산업의 신화였던 소니의 추락이 심상치 않다.

소니는 지난 17일 2014년 회계연도 (2014년 3월∼2015년 3월) 적자 예상치를 연초 발표한 500억 엔에서 2300억 엔(약 2조1947억 원)으로 대폭 하향 조정하면서, 1958년 상장 이래 처음으로 무배당 결정을 내렸다.

주력 상품으로 앞세웠던 스마트폰이 시장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연간 손실 1800억 엔을 기록한 것이 핵심 원인이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 출범 이후 엔저 정책 등으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실적 개선 효과를 누리고 있는 상황도 소니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튿날인 18일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전락’ ‘패배’ 같은 표현을 동원해 소니의 ‘무배당 사태’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신용평가회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현재 투자적격 최저 등급(BBB-)인 소니의 신용등급을 정크(투자부적격) 등급으로 강등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주가는 하루새 8.64% 급락했다.

◆후발주자 샤오미에도 밀린 스마트폰 = 2012년 4월 소니의 구원투수로 전격 등판한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 사장은 스마트폰 등 전자부문 강화를 생존 전략으로 제시했다. 2013년에는 스마트폰 부문 매출액을 전년 대비 55% 증가한 1조1918억 엔으로 늘리면서 소니의 회생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올해는 한국 삼성전자와 미국 애플에 이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3위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찬 목표까지 내걸었다. 고객 확보를 위해 음악·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강화한 프리미엄 스마트폰 엑스페리아 신제품을 비롯해 제품 가격을 2만5000엔(약 25만 원) 수준으로 낮춘 초저가 상품까지 출시했다.

그러나 고가 시장에서는 삼성과 애플에, 저가 시장에서는 중국의 레노버 등에 밀리면서 소니의 성장 시나리오는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지난 2분기 소니의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후발주자인 중국 샤오미(小米)에도 밀린 4.4%에 그쳤다. 결국 소니는 올해 스마트폰 판매 목표치를 당초 4300만대에서 700만대(16.3%) 줄였다.

◆‘문과 최고경영자(CEO)’의 적당주의 = 업계에서는 장기간 업계 최고의 자리를 지켰던 소니의 경영진이 안이한 경영 판단을 연발하면서 작금의 사태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전직 소니 임원의 말을 인용해 “모양 좋게 보이기 위해 판매 전망치를 높이라는 지시를 하는 등 지나친 적당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는 히라이 사장이 “중국 업체들이 약진하고 경쟁이 격화했다”고 스마트폰 실적 부진의 이유를 설명한 것에 대해서도 “중국 기업들의 대두는 기존에 이미 예상됐던 상황이 아니냐. 너무 안이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창업 초기 소니를 일으켰던 기술력 대신 브랜드 관리, 판매 전략에 집중한 경영진이 조직을 무너뜨렸다는 비판도 높다. 경영컨설턴트 오제키 아케오(大關曉夫)는 “1995년 취임한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사장에 이은 하워드 스트링어 사장, 현재의 히라이 사장까지 모두 기술과는 무관한 ‘문과계 인물’”이라면서 “소니 발전의 원점은 천재 기술자였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 이부카 마사루(井深大) 체제에 있다”고 강조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거듭날까 = 전문가들은 실적 부진의 핵심인 전자 부문의 사업구조를 재편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스마트폰을 주력 제품으로 내세우는 전략을 포기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소니 전자부문의 2014 회계연도 영업이익은 560억 엔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센서·카메라·게임기 부문에서 1240억 엔의 흑자를 냈지만 스마트폰 부문의 적자 1800억 엔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라쿠텐(樂天)경제연구소 구보타 마사유키(窪田眞之) 수석 애널리스트는 니혼게이자이 인터뷰에서 “스마트폰을 핵심 사업에서 분리하고, 강점이 있는 고급기종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영화·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소니의 기업 정체성 자체를 전자에서 엔터테인먼트로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소니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는 10년간 영업이익 7100억 엔을 올리면서 성장해왔다. 소니의 주요 주주인 미국 헤지펀드 서드포인트 파트너스는 소니에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분리해 기업공개(IPO)를 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도이치증권의 나카네 야스오(中根康夫) 애널리스트는 “엔터테인먼트, 금융, 소비자 전자, 기업용 전자 4개의 회사로 나누고 본사는 슬림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하나 기자 han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