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國監 본질 벗어난 기업인 호출 惡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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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서울대 교수·경영학

2010년 2월! 전세계인의 이목을 끄는 소식이 있었다.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인 토요타자동차의 도요타 아키오 회장이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는 모습이다. 2008년 토요타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자, 도요타 회장은 위기의 토요타를 구하기 위해 전면에 나선 창업주의 4세대다. 하지만 불과 취임 1년 만에 토요타의 최고급 자동차 렉서스가 급발진 사고를 맞았다. 이후 토요타는 전 세계에서 1000만 대 이상을 리콜하는 최악의 사태를 겪었다.

미국 하원은 이례적으로 도요타 회장을 직접 청문회에 소환했다. 처음에는 토요타 미국 법인 사장을 대리 출석시키려다, 세계적인 여론 때문에 직접 출석했다. 미국 의회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무려 8시간 동안 도요타 회장에게 수 많은 질문을 던졌다. 의원들의 질문 중에는 자동차 산업의 전문가를 능가하는 수준 높고 깊이 있는 질문도 많았다.

하지만 도요타 회장은 8시간 내내 아주 진솔하고 신중하게 답변했다. 유가족에 대한 애도는 물론 리콜 사태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했다. 재발 방지와 고객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했다. 이같은 도요타 회장의 진솔한 증언들은 세계 언론의 자세를 바꿔 놓았다. 처음에는 도요타 회장의 출석을 악재로 취급하던 언론들이 도요타의 진정성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청문회가 끝난 다음 날 미국과 일본 시장에서 토요타의 주가는 모두 큰 폭으로 반등했다.

도요타 회장의 미 의회 출석 사례는 국정감사를 앞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첫째, 증인 호출에 대한 국가적인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토요타의 경우는 물론이고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의 최고경영자들도 국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했다. 하지만 해당 기업인을 증인으로 호출하는 것에 대해 언론들이 공감하고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왜냐하면 토요타의 경우처럼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사안들이었다.

둘째, 국가적 관심과 참여자의 시간 가치를 고려한 깊이 있는 국정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미 의회의 경우 해당 경영자들이 청문회에 출석해 적어도 2∼3시간 이상 의미 있는 토론을 했다. 고작 1∼2분의 답변을 위해 10시간 가까이 대기하는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셋째, 주요 경영자들이 의회에 출석해 토론을 하는 경우에는 실효성 있는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한다. 토요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등은 소비자 신뢰 회복과 공정 경쟁을 위한 체계적인 대책을 수립했다. 그리고 미 의회는 관련 법률을 최대한 신속하게 정비해 입법기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했다.

올해에도 국감(國監)에 기업인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문제가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 국회는 2011년 기업인 80명을 증인으로 호출했다. 그리고 2012년 164명, 2013년에는 177명을 불렀다. 올해에는 200명이 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본질을 벗어난 기업인 호출 악습(惡習)을 그대로 보여준다.

경영자의 시간 가치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2011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민주당 전당대회에 필요한 기금 모금을 위해 재력가 50여 명을 초청했다. 이때 초청받은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위해 지불한 비용은 1인당 평균 3만800달러(3400만 원), 모두 합쳐 154만 달러(15억 원)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세계적인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 점심 한끼를 먹기 위해 지불한 돈은 346만 달러(36억 원)였다. 과연 우리 국회는 경영자의 시간을 얼마나 존중하는가.

국회가 베짱이 같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실효성과 품격을 갖출 필요가 있다. 마구잡이식 국감 증인 채택은 재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