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指鹿爲馬(지록위마) 된 청마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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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 / 정치부 부장대우

청마(靑馬)의 해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해로 마감하고 있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사슴을 말’이라고 한 지록위마를 정한 것은,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 흑과 백이 뒤바뀐 모순된 사회현실과 권력의 이중성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사마천의 사기 ‘이사(李斯)열전’에 소개되는 지록위마 고사는, 진나라 지배계층의 추악한 권력투쟁을 통해 절대 권력의 부패와 전횡이 초래하는 망국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협잡과 부정으로 형의 권력을 훔친 진나라 2대 황제 호해(胡亥)는 어리석고 무능한 지도자의 표상으로, 최측근 환관 출신 조고에게 처절히 배신당한다. 진시황제의 유서 조작으로 호해를 꼭두각시 황제로 옹립, 환관에서 승상으로 수직 상승한 조고(趙高)는 음험한 간신의 대명사로, 권력욕과 배신의 대가로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사는 진시황제의 통일대업을 도운 일등공신으로 평민에서 승상의 자리에 오르지만 조고의 농간으로 3족이 몰살당하는 비극적 인물이다. 사마천은 진시황제에게 분서갱유(焚書坑儒)를 권하고, 조고의 호해 옹립 음모에 동조하며, 백성에게 가혹한 형벌 정책을 편 이사를 호되게 꾸짖는다. “역사를 후퇴시켜 백성을 비참하게 만든 역사의 죄인”이라며 사마천이 이사를 단죄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사마천의 비판 대상은 관료 등 엘리트 계층의 이중성이다. 이사는 현대판 관피아를 상징한다. 지록위마 고사는 국민과 국가보다 권력자에 봉사·아첨하고 사욕을 채우려고 권력을 행사하는 위정자와 관피아에 대한 엄중한 경고 메시지다.

올 한 해를 장식한 세월호·통합진보당·병영폭력·땅콩회항·정윤회 사건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시대착오적 인식’이다. 세월호 참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인식과 국가 대응 시스템의 후진성을 온 국민이 피부로 절감한 사건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소모적 정쟁으로 흐른 정치의 후진성은 국가 쇄신의 호기마저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국민 60% 이상이 찬성한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체는 3대 세습 봉건왕조의 이념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시대착오적 정당 탓에 한국 사회가 정신적 분열에 직면한 불미스러운 사건이었다.

병영폭력과 방산부패는 폐쇄적인 군 조직이 인권과 반부패의 시대 흐름에 뒤처져 셀프 개혁에 실패하면서 국민적 저항에 맞닥뜨린 불행한 사건이었다. 대한항공 땅콩회항은 수많은 비정규직 장그래 미생(未生)들에게 하늘과 땅만큼 다른 세상이 실재한다는 좌절감을 안겨줌으로써, 사회의 균열을 키운 희극적 사건이었다. 정윤회 동향 문건을 둘러싼 전·현직 대통령 측근들의 추태와 오불관언(吾不關焉), 위정자들의 무책임한 행태는 지록위마의 결정판으로 거론되고 있다.

광복 70주년인 2015년 을미년은 시대착오적 사건·사고들이 사라지길 소망한다. 올해 송년회에서 ‘새양말’이란 건배사가 유행하는 것은 핵폭탄급 사건·사고 등 아픈 기억을 빨리 잊고 청양(靑羊)의 해에 새 희망을 걸고 싶은 바람 때문일 것이다. “새해 양의 해가 온다. 가는 말아 수고했다!”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