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세우려… 서태후, 상어 지느러미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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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맛 / 가쓰미 요이치 지음, 임정은 옮김 / 교양인

한국 ‘중국집’에서 맛볼 수 있는 ‘짜장면’은 정작 중국엔 없다. 더 이상 이 사실에 놀라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중화요리란 무엇일까. 베이징(北京)덕(북경오리)? 아니면 훠궈(火鍋·샤부샤부)? 저자는 화교들을 중심으로 세계 각 지역의 특색에 맞춰 변형된 요리가 아닌 ‘진짜’ 대륙 식문화의 과거와 현재 속으로 들어간다. 1960년대 후반부터 30여 년간 중국 본토를 오가며 찾아낸 중국의 ‘맛’을 생생하게 전하는 것. 책은 청나라 최고 미식가 건륭제가 즐긴 남방 요리, 서태후의 상어 지느러미,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랑한 매운맛까지, 식탁에 깃든 중국사의 결정적 순간과 중국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살핀다.

청나라 4대 황제인 강희제 때 처음 등장한 만한전석(滿漢全席)은 지방에 부임한 만주족 관리를 토박이 한족이 접대하려고 고안한 연회 방식이다. 이 연회 방식은 만주족 요리와 한족 요리를 똑같은 숫자로 내놓는다. “만주족이 한족에게 ‘만들게 한’, 만한(滿漢) 융화를 위한 정치적 요리였던 것이다. (중략) 한족 요리에 만주족의 풍미와 만주에 가까운 몽골 스타일의 맛을 섞고, 거기에 후이족 요리를 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족 요리가 나아가는 방향 자체를 바꾸려고 했다.”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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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대표하는 고급 요리인 ‘상어 지느러미’는 실제로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전통적으로 청나라 황실에서도 먹지 않았던 음식. 유목민이었던 만주족은 해산물에 익숙하지 않았고 육지의 식재료를 선호했다. 그러나 청나라의 마지막 권력자 서태후가 이 관습을 깬다. 서태후는 몽골계 이슬람교도와 혈연인 한족의 피가 섞여 있다는 설이 있는데, 실제로 만주족이나 한족과는 다른 다양한 개성을 발휘했다. “서태후가 정말 상어 지느러미를 좋아했다기보다도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려는 목적에서 상어 지느러미를 즐겨 먹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다.” (105쪽)

책은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인 루쉰(魯迅·1881∼1936)이 본 베이징의 음식 풍경에 무려 20여 장을 할애한다. 루쉰은 1912년 5월 5일, 바람이 세차게 불고 하루 종일 흐렸던 이날 처음으로 베이징 동(東)역을 밟았다. 같은 해 청나라 왕조가 신해혁명으로 쓰러지고, 쑨원(孫文·1866∼1925)이 난징(南京)에 중화민국임시정부를 세웠다. 정치적으로 불안하던 시기. “루쉰은 주변에서 감도는 냄새에 코를 틀어쥐었을지도 모른다. 광장을 둘러싸고 장사하는 노점에서 돼지 곱창 구이 ‘바오두’, 간장 국물에 돼지 허파와 옥수수 경단을 넣어 먹는 ‘댜오쯔’, 그리고 사골 국물과 칡을 섞은 미숫가루 ‘유차’, 참깨와 기장 가루로 끓인 간식용 ‘？차’ 따위가 풍기는 연기와 악취 세례를 받았을 것이다.” (49쪽)

루쉰은 1919년 11월까지 사오싱(紹興)현에서 제공하는 후이관(會館)에 살았는데, 100m 정도 되는 거리에 남쪽 지방 입맛의 음식을 내놓던 식당이 있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었다고 한다. 또, 당시 베이징에선 남방 풍미가 유행이어서, 베이징 고유의 맛에 적응하지 못한 루쉰에겐 다행한 일이었다. 루쉰이 살던 숙소 바로 뒤편엔 후난(湖南) 후이관이 있었는데, 1918년 1월 19일 후난성에서 상경한 마오쩌둥이 이곳에 짐을 풀었다. “역사는 참으로 재미있다. 현대 중국의 두 거물이 일 년간 이웃에 살았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당시 베이징에 후난 요리를 파는 곳은 얼마 없었다. 농촌에서 온 마오쩌둥은 끼니때마다 퍽 곤란했을 터이다.” (67쪽)

마오쩌둥의 고향 후난성 사오산(韶山)은 습도가 높은 산간 지역이라 음식이 부패하는 것을 막으려고 기름과 고추를 많이 썼다. 이는 그대로 ‘혁명의 맛’이 됐다. 마오쩌둥은 “고추를 좋아하는 사람은 못 해낼 일이 없다”고까지 주장했는데, 오랜 혼란을 거쳐 마침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건 어쩌면 이 ‘매운맛’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추는 인민공사(人民公社)가 자랑하는 이른바 모범적 작물이었다. 요리가 그리 발전하지 못한 후난성 벽지의 고향을 생각하며, 마오쩌둥은 고추를 꽉 깨물고 그 매운맛으로 도시를 섬멸하는 환상을 눈앞에 그렸던 것이 아닐까.” (324쪽)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