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세이>고구려 사신, 왜 사마르칸트에 왔을까

이욱헌 / 駐우즈베키스탄 대사

푸른 도시.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이자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사마르칸트의 다른 이름이다. 14세기 말∼15세기 말 번성했던 중앙아시아의 마지막 통일 제국인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는 동서양 문물 교류의 중심지로서 찬란한 실크로드 문화를 꽃피운 역사적인 도시이다. 티무르 제왕이 좋아하는 푸른색으로 도시 전체가 건설돼 일명 ‘푸른 도시’로 불리던 사마르칸트는 2001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연간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문화 도시 사마르칸트는 한국에는 더욱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사마르칸트에 소재한 아프라시아브(사마르칸트의 옛 지명)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사신도(使臣圖)’ 벽화 때문이다. 1965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아브 궁전 유적에서 발견된 이 벽화는 7세기 중반에 조성됐으며, 당시 이 지역에서 흥성한 소그디아 왕국을 통치하던 바르후만 국왕의 공주 결혼식에 참석한 외국 사절단의 모습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벽화에 환두대도(環頭大刀)를 차고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신으로 추정되는 두 명의 인물이 다른 나라 사절들과 함께 묘사돼 있는 것이다. 이 두 명의 고구려인은 왜 한반도에서 5000㎞나 떨어진 사마르칸트까지 갔을까. 여러 학설이 있는데, 당시 연개소문이 권력을 장악하고 당나라에 대항해 치열하게 동북아의 패권을 다투고 있던 고구려가 당나라 후방에 위치한 소그디아 왕국과의 동맹 결성을 위해 파견한 외교 사신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마르칸트에 있는 아프라시아브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사신도’(使臣圖) 벽화.

사신도 벽화에 그려진 인물이 중앙아시아 소강국과의 군사동맹을 위해 고구려가 파견한 외교 사신인지, 아니면 단순히 신기한 서역의 문물을 찾아온 대상(隊商)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1400년이라는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고대 교류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증거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필자는 이 사신도를 볼 때마다 다급한 마음으로 5000㎞ 거리를 달려왔을 선배 외교관의 모습을 떠올리며 여러 생각에 잠기게 된다.

중앙아시아는 오랫동안 우리에게는 잊힌 지역이다. 우즈베키스탄도 한국에는 아직도 낯선 나라이다. 예전에 국내 한 TV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인들에게는 막연히 미인이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혹은 척박한 중앙아시아에 내던져진 이후에도 특유의 근면과 생의 의지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군 고려인 동포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가 보다 화제가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에는 한국이 전혀 낯선 나라가 아니다. 민족과 종교는 다르지만 우즈베키스탄 국민은 조상 공경, 전통 존중, 찬란한 역사적 유산에 대한 자부심 등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에 스스럼없이 친근감과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 수도 타슈켄트에서 차로 7시간 이상 걸리는 동부 지방도시인 페르가나에서 개최된 한국어 말하기대회에 참석했던 적이 있는데, 한국 유학을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유창한 한국어를 뽐내던 어린 소녀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며 기특하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신청 기간 때마다 이른 아침부터 한국교육원 앞에 길게 줄을 서는 젊은이들, 한국에서 일을 배워 ‘코리안 드림’을 이루고자 매년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하는 청년 근로자들, 자발적으로 사물놀이패를 구성해 공연하며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는 대학생 등 우즈베키스탄의 미래 세대가 한국에 내미는 선망의 손길은 5000㎞를 내달린 벽화 속 고구려 사신의 마음만큼이나 절실하게 느껴진다.

2014년 12월 말부터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우리 정부 지원으로 복원된 아프라시아브 궁전 ‘사신도’ 벽화의 모사도가 전시되고 있다. 1400년 전 벽화에 그려진 고구려 사신이 증명하는 양국 교류의 역사는 이제 정치·경제·문화를 망라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쌍방향 교류로 재현돼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양국을 부지런히 오가는 정부관계자, 기업인, 근로자, 예술가, 학생 등은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이 새로운 천 년의 상생의 협력을 이어갈 수 있는 발판이 되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욱헌(56) △건국대 정외과 △제19회 외무고시 △주가봉 2등서기관 △주프랑스 2등서기관 △주벨기에유럽연합 1등서기관 △구주1과장 △주프랑스공사참사관 △아프리카중동국심의관 △유럽국장 △주우즈베키스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