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경계해야 할 北의 ‘정상회담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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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휘 / 이화여대 교수·국제정치학

한때 세상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위정자들이 자서전을 쓰면서 최상의 제목을 고르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잘 모르겠다. 대개 그들이 선택한 제목만으로도 각자 살았던 삶의 시공간적 배경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세계대전을 해쳐온 영웅인 윈스턴 처칠의 ‘최후의 사자’, 해리 트루먼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딘 구더햄 애치슨이 냉전질서의 성공적인 안착을 만족해한 ‘세계 질서 수립에 참여’, 절정의 대중적 인기와 함께 스캔들 역시 끊이지 않았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나의 인생’은 다소 낭만적으로 들린다. 지금 국내에서는 국정을 책임졌던 경험을 토대로 ‘타이밍’을 선택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감이 도(道)가 텄을 법하지만, ‘대통령의 시간’이 출판된 ‘시간’으로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념적 휘발성이 매우 강한 북한 문제를 놓고, ‘대통령의 시간’이 주는 합리적인 교훈을 운운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남북 당사자 간 비화(秘話)의 공개가 남북관계에 해가 된다는 외교가(外交街)의 보편적인 교훈을 북한의 경우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 것인지의 문제는 섣불리 판단키 어려운 측면이 있다. 유엔 회원국의 입장에서 남북한은 국가 간 관계이고, 우리 헌법상 북한은 국내적 대상이며, 개성공단을 방문하고자 ‘출입국’이 아닌 ‘출경’ 절차를 밟아야 할 때 남북한은 특수한 관계에 놓인다. 북한이 은행 설립을 위해 100억 달러를 요구하고,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쌀 40만t을 요구했다는 ‘대통령의 시간’ 내용이 사실이라면,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과거보다는 많이 냉정해졌다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북한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이 서로 맞서 있다. 한편에서는 지속적인 관여정책과 교류사업을 통해 북한이 변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결국 변화와 핵(核) 포기는 북한의 의지에 달렸으므로,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냉정하고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두 가지 주장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교류와 냉정함을 동시에 겸비해, 북한이 개혁과 개방의 길로 들어서는 ‘임계치’를 넘어설 수 있도록 북한 문제를 잘 관리하고 또한 주도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자서전에 언급한 대로 ‘정상회담의 유혹을 이겨낸’ 과거 이명박 정권의 의지를 높게 평가해야 할지, 결국 단견(短見)이었다고 평가할지는 역사의 몫이다. 백 번 양보해서, 거래를 해서라도 우리가 원하는 평화통일이 이뤄질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전략일 수 있다고 하자. 하지만 100억 달러가 아니라 더 많은 돈을 지불하더라도, 북한은 ‘북한정권과 핵 개발’을 ‘평화통일’과 맞바꿀 수 있다는 ‘등가성의 원칙’을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박근혜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원칙 아래 과거와 달리 ‘신뢰’를 남북관계의 핵심 변수로 설정하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제시해 왔고, 나름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단임제 정부에서 남북관계라는 대통령 고유의 어젠다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다른 족적을 내고 싶은 유혹은 클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테이블에 올려놓는 전략적 고민은 이해할 수 있지만, 평화를 거래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북한의 행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