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先行 금지’풀고 수준별 교육 늘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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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일 / 서울대 교수·교육학

교육부가 방과 후 학교에 한해서는 선행(先行)학습 금지 규제를 푸는 공교육 정상화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법률 시행 후 6개월 만에 관련 규제를 폐지하는 안이 나온 것이다. 이 법이 제정될 때부터 찬반 의견이 갈렸고, 특히 반대 의견이 만만찮은 것을 고려할 때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폐지안이 나온 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학교교육 문제의 효과적인 해결 방안 찾기는 결코 쉽지 않다. 교육 내부의 기술적인 해결안과 함께, 개인의 성공·행복을 위한 교육 이외의 다양한 경로를 확보하는 등 사회 전체의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방안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선행학습 금지 관련 법안은 학교에서 편성된 교육과정이 왜곡 운영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입법됐다. 학생의 수준과 상관없이 학년을 앞서서 학교 교육과정이 운영되거나, 학교 교육과정에 명시된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평가를 하는 문제를 공교육 정상화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이 선행학습을 아예 금지하는 법률 제정으로 구체화했다. 이는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원래 취지와는 다르게 공교육을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선행학습을 요구하는 수요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태에서 학생과 학부모는 학원의 교육을 더 많이 선택하게 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예컨대, 고교 이과 수학의 경우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으로는 배워야 하는 양이 너무 많고 또한 수준도 높아서 이미 파행적인 운영을 해왔는데, 이를 법률로 금지 규제를 하니 학교보다는 학원으로 학생들의 수요가 몰린 것이다.

공교육 정상화는 학교의 자율성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 국가의 규제는 최소화하면서 개별 학교가 지역 학생·학부모의 교육 및 학습 요구에 대해 책임지고 자율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교실 현장에서 다양한 학생의 수준과 능력을 고려해 수업을 이끌어가는 개별 교사의 자율성에 바탕을 둬야 한다. 이 부분은 자율형 사립고의 성공적 운영에 따라 어느 정도 확인된 것으로 보인다. 개별 교사가 책임감을 가지고 교육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학교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 원칙에 따라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자율적인 환경 조성이 공교육 정상화의 기초가 될 수 있다.

개별 학생이 요구하는 선행학습과 단위 학교의 교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선행 교육을 국가가 나서서 법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교육의 자율성 원칙을 기본적으로 침범하는 것이다. 공교육 정상화는 큰 틀에서 단위 학교의 자율적 운영으로부터 나온다. 선행학습은 의미상 교육적 이상이라고 볼 수 있는 수준별 교육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학생의 수준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최근 공교육의 큰 방향이다. 일률적인 교육과정을 제공하기보다는 높은 수준의 학습자에게는 그에 맞는 적절한 선행학습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보통 수준 및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습자들에게도 그에 맞는 교육과정이 제공돼야 한다. 공교육의 정상화는 이처럼 적극적 대처를 통해서 가능하지, 법률적 금지 규제와 같은 소극적 대처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차제에 방과 후 학교의 경우에 한해 선행학습 규제를 푸는 조치에서 더 나아가 법률적 금지 조항 전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