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업체에 휘둘리는 기상청>라이다 탐지거리규격 15㎞ → 10㎞ 돌연 낮춰 …‘수상한 입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케이웨더가 라이다 제조사인 프랑스 레오스피어와 작성한 견적서(왼쪽)와 한국기상산업진흥원과 작성한 계약서. 김경협 국회의원실 제공

윈드큐브200S 입찰평가때
탐지거리·납품실적 이유로
두번 다 ‘부적격 판정’ 받아

‘케이웨더’ 출신 기상청장이
장비 구매발주 보류 지시 후
기상산업진흥원, 규격 완화

기상청이 항공안전 확보를 위해 구매한 ‘청천대기 윈드시어(Wind Shear·순간 돌풍) 탐지장비(LIDAR·Light Detection and Ranging·이하 라이다)’가 성능미달 논란으로 수년째 방치돼 있다. 케이웨더가 납품한 라이다가 현업용으로 쓸 수 없을 정도로 성능이 낮다는 기상청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애초에 이 장비를 납품받은 이유는 뭘까. 김동식 케이웨더 대표는 “한국기상산업진흥원이 검사·검수 항목마다 ‘적격’ 표시를 했고, 이 점은 검찰수사와 법원에서도 인정됐다”며 “기상청이 경쟁업체에 특혜를 주기 위해 케이웨더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기상청 관계자는 “기상청이 허술해 생긴 일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당시 케이웨더가 입찰과정 전체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며 “후폭풍이 무서워서 ‘노(NO)’라고 말하지 못한 직원이 여럿 있었다”고 말했다.

기상청의 기상장비 구매 대행 산하기관인 한국기상산업진흥원은 지난 2011년 3월 라이다를 도입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하는 장비인 만큼 일본·홍콩 공항의 사례를 참고해 규격서를 작성했다. 외부 전문가와 당시 국토해양부 공무원 등이 참여한 심의회의 결과, 규격서가 확정됐다. 그런데 당시 진흥원은 돌연 조달청 구매 발주를 보류했다.

문화일보가 국회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진흥원은 조석준 기상청장의 지시로 이처럼 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2월 기상청장에 취임한 조 전 청장은, 취임 전 케이웨더에서 초대 예보본부장을 지냈다. 이후 진흥원은 탐지거리 규격을 당초 15㎞에서 10㎞로 줄이는 등 라이다의 규격 요건을 완화했다.

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프랑스 레오스피어사와 케이웨더 사이에 오간 이메일 내용을 보면 레오스피어사는 케이웨더에 한국 기상청이 내건 규격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레오스피어사는 케이웨더 측에 윈드큐브200S의 탐지거리가 0.15∼5㎞라고 명시했다. 이런 논의가 오간 뒤에도 케이웨더는 입찰제안서에 윈드큐브200S의 최대 탐지거리를 10㎞로 써냈다.

2011년 9월 외부전문가가 참석한 1차 입찰제안서 평가에서 윈드큐브200S는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다음 달에 이뤄진 2차 입찰제안서 평가에서도 평가위원 전원이 부적격 판정을 했다.

윈드큐브200S가 탐지거리 규격과 국내외 납품실적 등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케이웨더가 1·2차 평가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면서 조달청이 3차 입찰제안서 평가를 맡았다. 조달청은 진흥원에 탐지거리와 납품실적의 유권해석을 묻는 공문을 보냈다.

당시 진흥원 A 부원장은 ‘탐지거리 10㎞ 규격을 납품할 수 있는 회사로서, 라이다를 국내외 공항에 납품한 실적이 있으면 된다’는 답변을 보냈다. 진흥원 실무진은 ‘10㎞ 규격의 제품을 국내외 공항에 납품한 적이 있어야 한다’는 기존의 규격서 내용을 부원장에게 설명했으나 부원장은 납품한 적은 없더라도 앞으로 납품할 가능성이 있는 회사라는 의미를 띤 문구로 변경한 것이다. 탐지거리 10㎞ 규격의 라이다를 국내외 공항에 현업용으로 납품한 적이 없는 레오스피어사는 이로써 납품 여지가 생겼다.

‘국내 공항에 납품된 적이 있는’이라는 규격 제한 부분에 ‘윈드시어 관측용’이라는 내용을 담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윈드시어 탐지용이 아닌 단순 기상관측용으로 납품된 적 있는 윈드큐브200S는 이에 따라 입찰제안서 조건을 충족할 수 있었다.

윈드큐브200S는 경쟁사인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윈드트레이서’보다 20억 원 가까이 저렴한 가격을 써내 3차 평가에서 최종 낙찰됐다. 진흥원 관계자는 “부원장의 답변은 탐지거리 10㎞의 현업용 윈드시어 탐지장비를 도입하려던 애초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 유권해석”이라며 “이 때문에 윈드큐브200S가 낙찰된 다음 수요처인 항공기상청에서 케이웨더에 미흡한 사항을 보완하라는 요청서를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케이웨더 관계자는 “우리는 진흥원이 제시한 규격서에 맞는 제품을 납품했을 뿐”이라며 “규격서 내용을 만든 것은 진흥원이고 그 규격에 맞춰 제품을 납품했는데 요구 사항과 다르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