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국어 능력’도 국가 경쟁력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민현식 / 국립국어원장

‘정부 3.0’의 성과와 가치를 느껴 볼 수 있는 ‘체험마당’ 행사가 오는 30일부터 나흘 동안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다. ‘정부 1.0’이 일방 행정, ‘정부 2.0’이 양방향 행정이라면, ‘정부 3.0’은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 능동적 정보 공개로 국민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행정을 뜻한다.

정부는 ‘3.0’시대에 맞춰 공공자료 공개, 부처 간 협업 장려로 거대자료(빅데이터)의 민간 활용을 장려하고 개인 맞춤형 통합 정보 공개로 기업 활성화와 창조경제를 추구한다. 그런데 정부 3.0이 아무리 좋은 정보를 공개해도 정보가 어렵고 난해어가 많다면 국민을 난독증 환자로 만들 뿐 정보는 그림의 떡이다.

우리나라는 일제 때 문맹률 80%였다가 광복 후 한글교육 덕분에 문맹은 졸업했다. 하지만 오늘날 정보를 읽고 이해하는 국어 능력 즉, 문해력은 낮아 국민의 난독 상태가 심각하다. 국립국어원의 국민 문해력 조사 결과를 보면 우수(11.9%), 보통(33.4%), 기초(45.9%), 기초미달(8.8%)로 나타나 기초 이하의 문해자가 54.7%로 절반을 넘는다.

15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문해력 조사에서도 한국은 고학력층이 꼴찌라, 배운 사람일수록 언어생활에 문제가 컸다. 그런데 최근 조사에서는 세대별 문해력 양극화도 심하다. 즉, 청소년 언어능력조사(PISA)에서는 청소년의 읽기 능력이 최고인데, 성인문해력조사(PIACC)에서는 35세부터 선진국 평균보다 낮다. 이는 입시와 취직이 끝나면 책을 보지 않고 국어 능력 향상을 도모하지 않은 결과다. 국민의 35%가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데, 안 읽으니 못 읽고 못 읽으니 정보에 어두워 경제적으로도 손해다.

모바일 시대에 언어는 급변하는데 국어 환경은 더욱 황폐해지고 국민의 문해력은 낮아져 계층 간 정보 격차가 소득 양극화를 낳는다. 언어 영향력 3대 주체인 학계·언론·기업은 외국어나 전문용어를 마구 사용하며, 노년층·저소득층은 정보 소외로 낙오되고, 청소년층은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교실 속 문맹자(학습 부진아)와 게임중독자가 급증한다.

언어생태학자들은 언어를 ‘건강한 언어’, ‘병든 언어’, ‘멸절 위기 언어’, ‘멸절언어’로 구분하는데, 한국어는 이미 ‘병든 언어’ 단계다. 특히 고유어는 ‘멸절 위기’ 단계다. 우리말로 해도 되는데 ‘패러다임, 마인드, 모멘텀, T/F, R/D’라고 하는가 하면, ‘엣지있다, 스마트하다, 럭셔리하다’ 같은 표현이 넘치고 간판은 외국어로 덮여 간다. 영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쉬운 영어(Plain English)’ 운동을 펼쳐 처음엔 꿈쩍도 않던 법조계·금융계도 이제는 적극적 협조자가 됐다. 제록스사는 난해어투성이의 2000단어로 된 소비자 계약서를 200단어로 줄였더니 신규 고객이 늘고 매출도 올라갔다고 한다. 우리 기업의 상품 안내문, 약관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것이 결국은 기업과 소비자의 소통을 막고 불신을 키운다.

정부는 학교·언론·시민단체 등과 ‘바른 언어, 고운 언어, 품격 있는 언어의 생활화’를 목표로 ‘언어문화개선운동’을 통해 공공언어 개선에 힘쓰고 있다. 전문용어를 순화, 보급하고 중앙 부처의 보도자료 문장 평가를 하고 있다. 좋은 댓글 달기 운동, 청소년 언어순화운동도 효과가 보인다. 학계·언론·기업도 난해어 순화에 힘써 우리말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겠다. 3.0시대의 한국어가 ‘건강한 언어’가 되느냐, 10대 무역대국에 걸맞은 ‘21세기 국제어’로 도약하느냐는 우리의 건강한 모어(母語) 의식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