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기부도 취업용… 스펙쌓으려 ‘억지 기부’

이력서 대외활동 적으려고 돈으로 시간 안들이고 쉽게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앞둔 대학교 4학년생 정모(27) 씨는 지난해 말부터 2개 사회봉사 단체에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있다. 모두 합쳐 한 달에 6만 원씩 빠져나가는 금액이 부담스럽지만 봉사활동 등 마땅한 사회 참여 이력이 없어 기부 활동으로 스펙을 쌓으려는 것이다.

정 씨는 “공모전, 학점 등 성실성을 보여줄 만한 사항은 준비했다”며 “다만 봉사 같은 대외 활동이 부족해 취업 때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까 봐 기부를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기부도 스펙’이라는 얘기가 돌면서 최근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기부 바람이 불고 있다. 돈으로 스펙을 산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취업 관련 인터넷 포털 카페에서는 봉사활동 등 사회 참여 이력이 부족한 취업준비생들에게 기부를 권하는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간을 내 꾸준히 하지 않으면 ‘티’가 덜 나는 봉사활동보다 정기 기부가 오히려 낫다는 식이다.

취업준비생 유모(28) 씨는 “정기 기부는 돈이 들지만 품은 크게 들지 않는다”면서 “기부를 오래 할수록 만들 수 있는 ‘스토리’가 많아져 취업 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취업 장수생들은 대부분 기부 활동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들어 자선 단체 후원 사업에 참여하는 젊은 층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아동복지 후원 기관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전체 후원자 중 20대 이하(0∼29세) 후원자 비율은 11.3%에 불과했지만 2011년 13.5%, 2012년 16.5%, 2013년 20.4%, 2014년 24.5%로 높아졌다.

재단 관계자는 “20대 기부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며 “온라인 기부 등 손쉬워진 후원 방법도 젊은 세대 유입에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긍정론과 부정론이 엇갈린다. 황승연(사회학) 경희대 교수는 “돈으로 억지스럽게 스펙을 쌓는 일이 개인의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순수하지 못한 기부 활동이 얼마나 지속될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익중(사회복지학) 이화여대 교수는 “기부는 해본 사람이 다시 하는 경향이 있다”며 “젊은 시절 타의로 시작한 기부가 사회 참여 인식을 심어주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