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만들고 형이 배급… “힘든 내색 한 번 안한 아버지 생각 나”

영화는 보는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에 따라 각기 다른 감동을 전하는 매체다. 또 만든 사람들의 정서도 고스란히 담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과 그 안에 담긴 절절한 뒷얘기를 접하고 나면 이야기가 더욱 풍성하게 다가오고, 감동도 배가된다.

오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약장수’(사진)가 그렇다. 이 영화는 아픈 딸을 위해 원치 않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 버티는 가장의 눈물겨운 생존기를 그렸다. 또 그 안에 실업문제와 독거 노인의 고독사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풀어냈다.

대리운전 기사인 일범(김인권)은 어느 날 취객의 오해로 회사에서 잘린다. 일범은 난치병에 걸린 딸을 치료하기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려 하지만 마땅한 기술이 없는 데다 신용불량자인 그를 아무 데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던 중 그는 친구의 소개로 소위 ‘떴다방’이라고 불리는 홍보관에 취직한다. 그는 이곳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웃음을 팔며 각종 건강식품과 생활용품을 강매하는 일을 하게 된다. 노인들의 딱한 사정을 봐주다 회사 사장(박철민)에게 모욕까지 당하지만 딸을 생각하며 눈물을 삼키고 다시 일터로 향한다.

이 영화의 제작과 배급은 친형제가 맡았다. 지난 2013년 영화 촬영 도중 병에 걸려 사망한 배우 고 박용식 씨의 아들들이다. 박 씨는 그해 5월 이장호 감독의 종교영화 ‘시선’에 출연하기 위해 캄보디아에 갔다가 유비저균에 감염돼 입국한 후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다 8월에 패혈증으로 숨졌다.

1967년 TBC 공채 4기로 입사해 연기를 시작한 박 씨는 5공화국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닮은 외모 때문에 방송 출연이 금지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 세 남매를 둔 가장인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참기름 장사를 하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약장수’의 공동 배급사인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의 박세준 본부장은 박용식 씨의 장남이다. 그는 “‘약장수’ 시나리오를 처음 접하고, 아버지가 생각났다”며 “아버지는 한 번도 밖의 일을 집에서 말한 적이 없다. 어렸을 때는 전혀 모르다 나중에 기사를 보고 아버지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된 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박 본부장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조치언 감독과 의논해 일범 캐릭터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녹여 넣었다. 박 본부장은 “일범이 딸을 위해 일하듯 이 세상 모든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처음으로 손을 잡아본 느낌을 살려 가슴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너스에서 직접 제작을 하려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막냇동생에게 제작을 맡겼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재현 대표는 급하게 ‘26컴퍼니’라는 영화제작사를 차려 이 영화 제작에 들어갔다. 또 주연 배우인 김인권, 박철민과 함께 홍보관에서 일하는 형수 역은 박 본부장의 매제인 성우 정형석이 연기했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서 안나의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 박지윤(박용식 씨의 딸)의 남편인 정형석은 스크린 데뷔작에서 개성 있는 연기로 작품의 맛을 잘 살려냈다. 박 본부장은 “동생과 매제도 아버지에게 생전에 못한 효도를 한다는 생각으로 영화에 임했다”며 “흥행에 대해 큰 기대는 안 하지만 아버지께서 가족을 사랑했던 마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15세 이상 관람가.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