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글로벌 해커들의 ‘테스트 베드’ 전락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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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들엔 좋은 먹잇감… 수시로 ‘들락날락’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2000만 명, 홈 와이파이 보급률 세계 1위,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2위, 세계 최초 5세대(5G) 네트워크 기술 시연….’

한국은 1994년 첫 상용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지난 20년 동안 그 기반 위에 스마트 기기와 네트워크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쌓으며 ICT 강국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보안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거대한 ‘ICT 공든 탑’은 그저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모든 기기들이 하나로 묶이는 사물인터넷(IoT) 시대에는 보안에 대한 위협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형 보안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한국이 글로벌 해커들의 ‘테스트 베드’(시험대)가 됐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신성장동력으로 급부상하는 ICBM(IoT·Cloud·Bigdata·Mobile) 환경에서 다양한 신규 서비스가 생겨나고 있지만 보안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고, 예산이나 투자 등이 매우 저조해 언제든 해커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국내 보안산업은 외형이 수년째 정체된 것은 물론 기술 측면에서도 ICBM 신성장 산업과 발을 맞추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실제 국내 정보보호 산업 시장은 오히려 전년보다 성장세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식정보보안산업협회(KISIA)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 정보보호 산업 시장 규모는 7조6022억 원으로 전년 대비 7.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년도 시장 성장률이 14.5%였던 것에 비해 절반의 성장에 그친 셈이다.

특히 지속적으로 보안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정보보안이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됐지만 보안관리 제품, 보안컨설팅 서비스 등의 일부 분야를 제외하곤 성장세가 예년만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보보안 분야는 전년 대비 4% 증가한 1조6958억 원, 경비업(물리보안) 분야는 같은 기간 8% 늘어난 5조9065억 원으로 집계됐다.

KISIA 관계자는 “지난해 기업들의 정보보호 예산이 정보기술(IT) 예산의 5%에도 못 미칠 정도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기존 솔루션 교체와 신제품 구매가 투자로 직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보안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한 것도 문제다. 3분의 2 이상이 자본금 10억 원 미만 영세업체들이다. 100억 원 이상도 찾아보기 어렵다. 상위 3개 업체가 불과 몇 해 전부터 매출 1000억 원대를 간신히 돌파했을 정도다. 국내 보안업체들이 ICBM 신성장동력에 대응할 ‘기초체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 진출하는 해외 대형 보안업체들은 늘고 있다. 열악한 국내 보안 환경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글로벌 보안업체 시만텍이 국내 보안관제 서비스 시장에 진출했고, 파이어아이도 침입방지시스템(IPS) 분야의 영역 확대를 선언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정보보안 산업은 협소한 국내 시장, 열악한 기술경쟁력과 우수인력 확보의 어려움 등 여러 난제에 직면해 있다”면서 “국내 업체들은 기초·원천기술 부족으로 혁신적인 신규 제품 개발보다는 백신 등 이미 포화 상태에 다다른 제품을 개선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보보호에 대한 투자와 예산도 ICT 강국의 위상에 미치지 못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국내 기업 중 80%가 정보보호 관련 지출이 사실상 ‘제로(0)’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예산도 매우 적다. 올해 정부 정보보호 예산은 2544억 원으로 전체 정보화 예산 4조2000억 원 중 6.1%에 불과하다.

이는 해외와는 매우 다른 현실이다. 지난해 미국 정보화 예산 중 정보보호 예산 비율은 15.4%에 달했다. 내년 예산은 더욱 큰 폭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월 의회에 2016년 회계연도(2015년 10월∼2016년 9월) 정보보호 예산을 140억 달러(약 15조3660억 원)로 책정했다. 전체 정보화 예산 860억 달러 중 16.2%에 달하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보안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보안을 지금처럼 필수가 아닌 선택 요소로 여긴다면 공든 ICT 탑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보안산업은 보안기술이 클 수 있는 토양이자 자양분”이라면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산업을 발전시키는 육성책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