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에 저항하는 반항아, 게이머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01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일렉트릭 엔터테인먼트 엑스포’에서 비디오 게임 ‘데스티니’가 시연되고 있다 . AP연합뉴스

제국의 게임 / 닉 다이어-위데포드·그릭 드 퓨터 지음, 남청수 옮김 / 갈무리

게임에 대한 학문적 논의들 대부분은 게임의 중독성이나 유해성, 가상 현실에 대한 철학적 성찰 혹은 문화콘텐츠 산업 측면의 분석이다. 캐나다 정보미디어 학자와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두 저자는 ‘제국의 게임’에서 게임을 전혀 다른 측면에서 분석한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비디오게임’이라는 부제가 단서다. 매출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할리우드에 필적하는 게임은 중독을 부르는 상업적 대중 오락이 아니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하는 주요 장치라는 것이다. 현실의 자본주의, 환경문제, 빈부격차, 전쟁 미화 등을 가상세계에 구현해 결과적으로 이를 더욱 공고히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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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학술서지만 게임을 새롭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은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을 기본 틀로 삼는다. 네그리와 하트는 탈근대시대에 등장한 전 지구적 체제를 경제, 관료, 군사, 커뮤니케이션 체제 등이 결합한 권력시스템인 ‘제국’으로 봤다. 이 제국에서 네트워크화된 가상 게임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모범적 매체다. “18세기 소설이 중상적 식민주의가 요구하는 (또 그것을 비판하는) 부르주아적 인격을 생산하는 텍스트 장치였고, 20세기 영화와 텔레비전이 산업적 소비주의에 필수적이었다면 가상 게임은 21세기 전 지구적 초자본주의를 구성하는 매체, 그러면서도 그것으로부터의 탈출 인계선(당기기만 해도 폭발물이 폭발하는 선)을 구성하는 매체”라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예를 들어 미국 국방부의 무료 1인칭 슈팅 게임 ‘아메리카스 아미’는 300만 명의 현역 군인과 재향 군인이 수행하는 병역 업무를 게임 형태로 바꾼 것이다. 게임에는 실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전에서 무공 훈장을 받은 군인들의 공적 기록이 포함돼 있다. 게이머들이 가상세계와 현실이 혼재된 게임을 로그아웃하면 곧바로 미 육군 웹사이트에 연결돼 입대 지원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는 미 국방부의 가장 효율적인 모병책이다. 미 국방부가 병사들의 훈련에 사용하는 상용 게임 ‘풀 스펙트럼 워리어’ 역시 제국의 실제 전선(戰線)을 개인의 방 안으로 옮겨놓는다.

게이머들은 게임을 하면서 자신을 제국의 병사와 동일시하게 된다. 다중접속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퍼블리셔인 블리자드가 길드를 활용하여 게임이용자의 ‘제2의 삶’을 통제한다. 또 가상현실 게임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부의 축적 정도에 따라 계급이 분할된다. 제국의 모범 매체의 역할은 가상세계 밖에서도 나타난다. 게임 노동자에게 가상 제품의 생산은 처음엔 신나고, 재미있다. “나 일하러 가야 해”가 아니라 “나 일하러 갈 거야, 좋았어!”라고 외친다. 예컨대 일렉트로닉 아츠의 북미 주요 제작사들은 매력적인 공간과 높은 수준의 편의시설 등을 자랑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직원들은 21시간 작업하고 소파에서 잠을 잔 뒤 일어나 다시 작업에 돌입한다. 강요하지 않는 성취, 다르게 말하면 개인의 자발적인 ‘착취’이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저자들은 제국의 게이머들이 제국에서 벗어나려는 탈주를 시도한다며 희망을 본다. 2007년 ‘세컨드 라이프’속 IBM 회사캠퍼스에서는 이탈리아 IBM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는 국제노동조합의 디지털 시위가 열렸다. 게이머들은 세컨드 라이프 가상 공간 안에 기업이 진출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기도 했다. 이레이셔널게임스의 ‘바이오쇼크’의 경우 자본주의적 유토피아 실험이 실패로 끝난 뒤 썩어가는 바다 속 도시가 배경이다.

설정은 1960년대이지만 자유시장과 근본주의적 종교가 결합된 도시 ‘랩처’는 21세기 초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흩어진 게이머들이 ‘다중’이 돼 제국에 충격을 던지는 것이다. 저자들은 “게임을 하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이해하는 것”으로 가능한 세계의 집단적 구성과 탐색을 위한 수단일 수 있다며 “제국에 대항하는 게임 이용자들!”은 지향할 만한 행복한 슬로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표정훈 <출판평론가·한양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