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달러 뇌물연루 정황 포착… 5選 5일만에 ‘백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2일 스위스 취리히의 FIFA 본부에서 가진 긴급 기자회견에서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사의를 표명하고 있다. 블라터 회장은 미 연방수사국의 FIFA 수뇌부 수사 압박 속에서도 지난 5월 29일 FIFA 회장에 당선됐지만 이날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이로써 1998년부터 17년간 축구계의 제왕으로 FIFA를 이끌어온 블라터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EPA 연합뉴스

고령에 측근들 이탈도 원인
사임과 관계없이 계속 수사

당선 5일 만에 백기를 든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의 사임 배경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개최지 선정용 뇌물과 관련된 서한 공개가 결정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자신의 최측근인 제롬 발케 FIFA 사무총장이 뇌물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이 확인되자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는 관측이다.

2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디펜던트는 2008년 3월 4일 몰레피 올리판트 남아공축구협회장이 발케 사무총장에게 보낸 “남아공월드컵 조직위원회에 지원할 자금 1000만 달러(약 111억 원)를 잭 워너 당시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회장의 관리 계좌로 보내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공개했다.

서한에는 ‘제롬 발케 사무총장’이 수신인으로 명시돼 있었고, 워너 회장이 1000만 달러를 직접 관리하고 집행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미국 수사당국은 남아공 요청에 따라 FIFA 계좌에서 워너 회장 계좌로 1000만 달러가 송금돼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위한 뇌물자금으로 쓰인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이 같은 논란이 일자 FIFA는 발케 사무총장은 물론 고위 간부들이 송금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공식해명을 했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만에 공식 해명과 배치되는 서한이 공개되며 블라터 회장은 전격 기자회견을 자청해 사의를 표명했다. 사의 표명 기자회견에서 그는 “지난 40년간의 나의 인생과 회장직을 되새겨보고 고민했고 그 결과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FIFA 조직과 전 세계 스포츠인 축구”라며 “FIFA를 위해 그리고 축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 언론들은 체포된 FIFA 고위 간부들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블라터 회장의 혐의점을 찾고 있는 미국 수사당국이 주요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ABC는 수사 상황에 정통한 익명 취재원의 말을 인용해 “(부패 혐의로 체포된) FIFA 고위 간부들이 스스로 살길을 찾으려고 할 것이므로, 누가 먼저 (블라터가 연루됐다고) 불지 경쟁이 붙을 것”이라고 밝혀 금명간 블라터 회장의 연루 사실이 밝혀질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과 함께 FIFA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는 스위스 검찰(OAG)은 블라터 회장의 사임 발표와 상관없이 비리혐의 연루자들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BBC는 2일 OAG가 블라터 회장의 사임 발표 직후 내놓은 성명을 인용해 “OAG는 불법적인 자금 세탁 혐의를 받고 있는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며 “블라터 회장은 현재까지 수사대상이 아니며 사임 발표는 향후 수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BBC는 미국과 스위스 당국의 수사와 함께 유럽축구연맹(UEFA)의 FIFA 집행위원회 탈퇴 및 블라터 회장의 고령을 사의 표명의 배경으로 꼽았다. UEFA 주요 인사들은 1일 FIFA의 최고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에서 사퇴하기로 결정하며 블라터 회장을 압박했고, 앞서 UEFA를 중심으로 월드컵에 대항할 국제적인 축구대회를 만들자는 제안까지 제기됐다. BBC는 또 “79세의 블라터 회장이 이번 사태를 겪으며 쇠약해졌고, 측근들이 연이어 사퇴하며 힘을 잃어 사임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대종 기자 bigpap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