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美 7 : 中 3’ 외교 펼쳐야 한반도 안정-국익 도움”

윤덕민 국립외교원장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이 지난 5월 29일 서울 서초동 국립외교원 원장실에서 2시간여 진행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정부가 지향해야 할 외교·안보 전략 기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5대 5 식의 균형외교로는 안 됩니다. 최소 7대 3은 돼야 한국의 국익 확보와 한반도의 안정이 가능합니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정부의 외교전략 비중을 묻는 질문에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이 내린 처방이다. 외교전략가들은 국가 관계를 계량화하는 데 주저하는 게 보통이지만 윤 원장은 조금도 거리낌 없이 답을 내놨다. 박근혜정부가 대미·대중·대일 외교 모든 측면에서 최대의 시련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상황에서 제시한 윤 원장 나름의 해법이다.

“한국 외교의 지향점은 탄탄한 한·미 동맹을 70% 확고하게 구축하는 데 맞춰져야 합니다. 그러고 난 뒤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30%의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왜 그런가.

“그래야 중국의 부상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요인을 중화시켜 나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중국이나 일본이 몽니를 부리면 우리가 감당해 나갈 수 있느냐, 이런 측면에서도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안정적인 균형을 만들어 나가는 게 핵심 축”이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7대 3 외교론’이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 ‘5대 5 외교론’이나 ‘9대 1 외교론’이 갖는 한계에 대한 윤 원장의 복잡한 국제정치학적 분석이 잇따랐다. 오히려 윤 원장의 논리에서 주목되는 지점은 ‘30% 중국론’이다. 그에게는 변화하는 현실과 이상, 실리와 명분을 충족시키는 최적의 조합이다. 실제 10년 전 노무현정부 시절 한·미 동맹의 비중을 지나치다 할 정도로 강조하는 ‘동맹파’의 논객으로서 균형외교를 기치로 한 ‘자주파’와 각을 세웠던 그다. 윤 원장으로서도 중국 급부상이라는 현실 변화를 반영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윤 원장의 인터뷰는 지난 5월 29일 국립외교원장실에서 2시간여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고조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는 한반도 안보 상황, 과거사 왜곡과 영토 도발을 일삼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책 등. 인터뷰는 모든 게 꼬일 대로 꼬인 복잡한 실타래를 풀기 위해 외교·안보의 기본을 찾아가는 작업이었다.

우선 아무리 중국이 급부상해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주요 2개국(G2) 시대가 도래하고 전략적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해도 세계 질서의 기본 구도는 변하지 않았다는 게 윤 원장의 출발점이다. 최근 미국의 귀환이라는 팍스 아메리카나 3.0시대 논리와 유사하면서도 뉘앙스 차이가 있다. 좀 더 직접적으로 윤 원장은 “미국 우위의 국제 질서는 전에도, 후에도 큰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21세기 세계 질서와 분업구조를 주도하는 것은 미국이고, 중국은 미국 주도의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에 편입돼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중국이 10년 전과 판이하게 경제적·군사적으로 진화 속도가 빠르다 해도 기본적으로 한계를 못 넘는 유리 천장이 있다는 의미다.

“중국이 잠재력도 크지만 중진국의 함정이라는 것도 있고 앞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를 겁니다. 미국의 우위라는 국제 질서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의미죠. 1·2차 세계대전을 평가하는 모델을 갖고 21세기 정보화·세계화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이 만든 글로벌라이제이션 속의 중국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윤 원장은 일각에서 힘을 얻고 있는 5대 5 식의 균형외교론에 비판적이다. 그는 “19∼20세기와 같은 패권세력의 균형시대가 아닌 만큼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취해 봐야 얻을 실익이 없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외교·안보 참모들 사이에서 초기와 달리 시간이 갈수록 심심찮게 거론되는 균형외교론에 대한 우려도 느껴진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이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참고 문헌을 꺼내 들어 설명하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대와 일본 게이오대 대학원 출신 유학파답게 책장에 꽂혀 있는 각종 서적들이 눈에 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균형외교가 정책 노선으로 갖는 한계는 뭡니까.

“박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친분이 두터운 건 우리 외교의 자산입니다. 그게 우리에게 불리한 건 아니죠. 그러나 정부도 기계적인 균형을 취하는 외교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균형외교의 시대라기보다 다양한 국가와의 관계를 심화시켜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최근 ‘한국이 두 개의 태양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담론이 확대되고 있는데 이게 과연 선택의 문제인가 싶습니다. 우리가 중국을 선택해야 하느냐, 과거의 중화 질서로 돌아가야 합니까. 현재도 국제 분업구조를 주도하는 건 미국입니다. 그 속에 중국이 들어가 있을 뿐이죠.”

―무조건적인 한·미 동맹 강화가 답인가요.

“지금까지 한국 외교는 한·미 동맹을 굳건히 진행해 가면 외교적 실수가 있다고 해도 나라의 존망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일본이나 중국과 관계가 어떻든 한·미 동맹이 굳건하면 됐는데 이제 달라졌죠. 한·미 동맹도 추구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심화시켜야 하는 환경이 됐습니다.”

―전략적 환경이 급변하고 있고, 중국이 한국에 갖는 중요성이 예전보다 커지면서 미·중 간 샌드위치론과 같은 위기론이 나오는 듯합니다.

“중국이 부상하면서 예전과 다른 파워 폴리틱스 시대로 들어간 건 분명합니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을 펴고 있고요. 강대국 정치의 도래이자 지역 질서의 급격한 변화입니다. 북한의 불확실성까지 포함해 예상을 뛰어넘은 어려운 환경이 초래됐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 건지, 너무 한쪽에 치우치는 건 아닌지, 한·미가 두터워지면 중국도 신경 써야 하고 한·중이 가까워지면 한·미 동맹이 약화하는 건 아닌지, 실체 없는 위기감 속에서 고립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꾸 동아시아 질서에 대해 20세기적 발상으로 평가하고 힘의 정치, 안보 차원에서 미·중을 보는데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 없습니다. 미국 아이폰이나 애플 제품들, 마이크로소프트 생산기지가 다 중국에 있습니다. 미·중 관계가 안보 차원에서는 라이벌이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복잡한 상호의존 관계입니다. 미국 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도 중국입니다. 중국 최고위층 자녀들은 미국 유학을 하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20세기 관점으로 미·중을 평가해서야 되겠는가, 새로운 이론과 교과서가 필요합니다.”

윤 원장의 30% 중국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일적인 한·미 동맹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국제 환경 때문이다. 제한된 틀 속에서 새롭게 형성된 질서에 따라 던져진 새로운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으로써다. ‘정치·안보=미국, 경제=중국’이라는 이분법은 그에게 20세기 구시대적 발상에 불과했다.

―그래도 대미·대중 외교의 비중을 맞추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기계적으로 따질 수도 없고, 모든 현안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역시 가장 중요한 기초가 한·미 동맹입니다. 한·미 동맹을 탄탄하게 만들어 나가야 중국의 부상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요인을 중화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지금 최악의 지정학적 조건에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이 몽니를 부리면 우리가 감당해 나갈 수 있겠느냐. 이럴 때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안정적인 균형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핵심 축입니다. 한·미 동맹이 있기 때문에 중·러·일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대미·대중 외교의 비중을 말하자면 7대 3입니다. 중국이 유사시 한국 안보를 보장해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중국은 태평양까지 진출하겠다는 건데 함대가 나오려면 한반도를 넘어야 합니다. 이때 중국으로서 가장 어려운 포인트가 한·미 동맹입니다. 특히 경기 평택에 동북아 최대의 주한미군기지가 있는데 중국으로서는 굉장히 중요하고 전략적인 견제 포인트죠. 거꾸로 미국에는 가장 중요한 곳이고요. 미국이 한·미 동맹에 대해 말하는 린치핀(linchpin·핵심 축)은 최상급 동맹의 표현입니다.”

윤 원장은 특히 한·미 동맹 현안과 관련해 중국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고 눈치 보기를 하는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국에 한국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데도 한국 스스로 너무 왜소화시키고 있다”는 우려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중요한 가교 역할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한·미가 가까워질수록 중국의 견제가 심해집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도 그렇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대해서도 불평해 왔고요.

“60년 된 한·미 동맹이 자꾸 중국 눈치를 보는 게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가 중국 눈치를 보면 미국이 매우 섭섭해하고 반발할 수 있습니다. 사실 중국은 한·미 동맹을 깔고 가고 있는데 우리 스스로가 중국을 의식하면서 한·미 동맹을 (낮춰 인식시키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국의 눈치를 본다는 건 오히려 한·미 동맹을 어렵게 만드는 일이 됩니다.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특혜만 받는다고 생각하는 시각도 잘못됐습니다. 중국 주변 15개 나라 가운데 제일 관계가 좋은 나라가 한국과 파키스탄 정도입니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 한국이 서방국가의 통로로 중국에 역할을 했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때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중국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 상황도 마찬가지죠. AIIB도 중국이 주는 시혜가 아닙니다. 우리 입장에서 왜 AIIB에 늦게 들어가서 손해냐 그러는데 그런 게 아니라 중국 쪽에서는 한국이 큰 선물을 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시아 국가 중 가장 선진 경제를 가진 한국이 참가를 결정해준 것은 결정적이었습니다. 이처럼 중국의 서방과의 관계에서 한국은 통로로 양자를 맺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 입장에서도 이 같은 한국의 역할이 도움된다고 봅니다. AIIB에 가더라도 투명한 거버넌스를 하도록 한국이 할 수 있죠.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역할이 있습니다. 한·미 동맹이 굳건해야 중국에 전략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이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있었기 때문에 한·중 FTA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 연결돼 있는 요소입니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무역관계가 커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동시에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위기도 현재성의 위기라기보다 미래 50년, 100년을 내다보는 위기라는 점에서 중장기적 관점이 필요하지 않나요.

“급변하는 전략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면 어렵게 된다는 데 동의합니다. 결국 한·미 동맹을 축으로 중국 부상에도 대응하고 주변국과 다양한 중층 관계를 통해 국익을 최대화해야 하는 게 외교의 과제입니다.”

윤 원장 논리의 주축을 이루는 한·미 동맹이 최근 이상 기류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논란에 대해 그는 단호하게 부인했다. 특히 4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국빈방문을 통해 질적으로 새로운 미·일 밀월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시각에 대해 냉혹하게 평했다.

윤 원장은 “사실 우리는 2년 전 박 대통령이 국빈방문과 미 상·하원 합동연설 등 아베 총리가 이번에 한 일을 이미 했기 때문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6월 박 대통령의 방미 기간(14∼18일) 중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은 보여주기식 이벤트보다 실질적인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대 의제는 역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꼽았다. 윤 원장은 “시간이 우리에게 별로 없다”는 말로 심각한 인식을 드러냈다.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도 했고 내부 정세도 분석해야 할 게 많습니다. 이란 핵도 타결됐기 때문에 북핵을 방치해서는 안 되고 한·미 간에 이니셔티브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 지났습니다. 북핵을 방치하면 핵이 실전 배치되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새로운 모멘텀을 구축하는 기회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동참시킬 방법이 없나요.

“중국도 적극적인 이니셔티브를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6자회담 외의 아이디어는 없는 상황인데 모멘텀을 이어가야 합니다.”

―지금 제재를 더 강화하면 북한이 항복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북한은 경제 상황을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잠수함을 새로 건조하고 있고 신형 함들을 만들고 있죠. 기갑부대를 총동원해서 훈련도 하고요. 이런 모순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 면밀하게 북한 경제를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지난 20여 년을 보면 북한의 외교술은 놀랍습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한·중·러·일을 돌아가며 접근했고, 6자회담 참여국은 조율된 입장 없이 북한의 각개격파에 당해 왔습니다. 최근 일각에서 ‘북핵 문제를 거론하면 남북관계가 거덜나기 때문에 평화협정을 맺은 후에 핵 문제를 얘기하자’는 담론이 생기고 있는데 위험한 발상입니다. 북한 체제는 트랜스포메이션(전환)이 필요하고, 체제 성격이 변해야 핵 문제도 해결됩니다.”

―정부가 일본에 대해서는 안보와 과거사를 분리하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한다고 하지만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발동을 놓고서는 여전히 우려가 많은데요.

“최근 일본 자위대, 집단적 자위권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한국 방어 메커니즘을 부정하거나 모르고 얘기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6·25전쟁 이래 유사시 한반도 방위에서 가장 중요한 안보 메커니즘은 미군과 유엔군이 일본에 있는 기지를 통해 얼마나 빠르게 병력과 자원을 충원하느냐의 문제입니다. 후방 지원 문제는 한·미·일 3국 간에 버추얼 얼라이언스(virtual alliance·가상동맹)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죠. 결국 미군, 유엔군 기지는 대부분 일본에 있습니다. 그런 기지들을 원활히 확보하기 위해 미·일 간에 또 한·미 간에 예전부터 깊은 얘기들을 나눠 왔습니다.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 라인) 개정을 두고 마치 일본의 군사대국화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1997년 개정 때도 이미 주변 사태 조항으로 자위대가 한반도 주변에서 움직일 수 있게 됐습니다. 유사시에는 자위대와 한국군이 동일 작전 영역에서 싸우게 되는데 정부는 당시 이에 대한 논의와 협정을 맺어야 했는데도 중국·북한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숙제로 덮어버렸습니다.”

―후방 기지로서 일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까지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인데 안보법제 개정이나 북한 선제타격론 등 일본이 도를 넘어설 가능성에 대한 우려 같습니다.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막는 확실한 병마개는 미·일 동맹밖에 없습니다. 그 틀 속에서 우리가 우려하는 부분을 일정 부분 관리할 수 있죠. 지금은 우리 스스로가 방어 메커니즘을 부정하는 경우가 있다고 봅니다. 한·일 정보공유협정이나 군수지원협정은 사실 초보적인 수준의 협력으로 해야 합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도 하고 있고, 별의별 나라들과도 정보보호협정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과는 진작에 했어야 할 일입니다. 군사대국화를 도와주는 행위도 아닙니다. 일본의 북한 선제타격론도 그런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미·일 가이드 라인에서 제3국, 한국의 주권을 존중하는 규정을 두지 않았던가요. 자위대가 우리 영역에 맘대로 들어오는 사태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제3국의 주권을 존중한다는 자체가 그런 의미입니다.”

윤 원장에게도 안보 문제와 달리 과거사 문제 해법에 대한 아베 정권의 한계는 명확했다.

윤 원장은 “아베 총리의 역사수정주의는 기존 한·일 관계의 틀을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고 지적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아베 정부의 면모입니다. 기존 한·일 관계의 틀을 완전히 넘어버렸죠. 한국이 계엄령까지 깔면서 정치적 결단으로 1965년 한·일협정을 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측면은 전후 일본은 평화국가의 길을 간다는 점 때문이었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확인해 왔습니다.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담화가 나오고, 김대중 대통령 성명과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 담화가 나왔죠. 어렵게 어렵게 좋은 탑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일본 보수화 흐름을 타 느닷없이 3, 4등 할 거 같던 아베가 총리에 당선이 된 겁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죠. 일본의 활력을 찾겠다는 아베 총리의 역사수정주의는 한·일 관계의 기초를 근본부터 흔들어버렸습니다.”

―아베 총리의 노림수는 뭔가요. 아베의 성향에다 미국의 지원까지 겹치면 어느 시점에서는 노골적인 군국주의를 드러내지 않을까요.

“가계가 우익적인 성향이 있는 데다 아베 생각은 이렇습니다. 옛날 일본 젊은이들은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로 나라를 위해 산화할 정도로 기율도 확립돼 있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초식동물처럼 나라에 대한 존경도 없다, 이는 역사를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는 좋은 역사였다, 아시아를 해방하기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다, 이렇게 새롭게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콤플렉스와 한국에 대한 위기의식도 겹쳤고요. 잃어버린 20년 평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현재 상황이 됐다고 봅니다. 그러나 일본이 군국주의, 군사대국으로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미국이 일본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역할을 더 많이 맡긴다고 해도 어느 수준 이상 확대되기에는 쉽지 않은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아베 총리의 집권 중에는 한·일 관계 회복은 포기해야 하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베 총리가 우익적인 측면도 있지만 실용적인 측면도 있는 지도자입니다.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일본이 역사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하나고, 한국도 과거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일본에서 일정 정도 안이 나왔을 때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니라 평가할 것은 평가하면서 해결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윤 원장에게 ‘한국이 샌드위치 신세를 면하고 외교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남북관계 진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묻자 “미·중 관계를 한국이 주도하도록 권한을 주기 위해 북한이 우리에게 과연 관계를 좋게 만들어 줄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윤 원장은 “북한이 왜 그렇게 하겠느냐. 오히려 미국과 중국을 동원해 남북관계를 잘 만들도록, 북한이 변화하도록 하는 게 더 빠른 길 아닌가”라며 웃음으로 말을 끝냈다.

인터뷰 = 김상협 차장 (정치부) jupit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