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비상-당국 대책 허점>최전선서 악전고투 의료진에 격려 대신 엄포 놓는 복지부

“정부가 엉망 대응해놓고 현장 두려움 생각해봤나”… 의료계 내부 ‘부글부글’

보건복지부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의심환자의 진료를 거부하는 의료기관을 의료법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일선 의사들의 불만이 팽배해지고 있다. 메르스 확산 초기 신고하지 않은 의사들을 처벌하겠다고 한 데 이어 또다시 보건당국이 ‘처벌’을 언급하자 의사들은 “현장에선 환자들 보기에도 정신이 없는데 복지부가 처벌 운운하면서 의사들만 몰아세우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권덕철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8일 정부세종청사 메르스 일일상황보고 브리핑장에서 메르스 의심환자 진료를 거부한 의료기관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권 반장의 발언은 의료법 제15조의 조항을 근거로 하고 있다. 법 조항엔 ‘의료인은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하고, 응급환자에게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선의 처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 발언 이후 일선 의사들의 거센 반발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권 반장의 발표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당 발언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김 교수는 “치사율이 5∼10%나 되는데도 진료를 봐야 하는 의료인들이 갖는 두려움을 생각이나 해봤나, 아무 검사시설도 갖추지 않고 혼자 진료실을 지키는 동네의원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나”라며 “그럼에도 묵묵히 진료하다가 감염돼 격리되고, 자녀들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그런 의료인들의 고충을 한 번이나 생각해 보셨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미 이름이 밝혀진 동네의원들은 ‘메르스 의원’이라고 낙인이 찍혀 문을 닫게 생겼는데 위로해 주거나 손해를 보상해 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마디라도 해보셨나”라며 “엄청 스트레스 받아가며 일하고 있는 의료인들에게 수고한다고 한마디 해주지는 못할망정 아주 직격탄을 날려 주신다”며 권 반장의 발언을 작심하고 비판했다. 김 교수의 글은 650명이 동감을 표하며 ‘좋아요’를 누를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한우하 센트럴피부과 원장은 “탁상공론 좋아하는 공무원들이 많으니까 오늘부터 한 명씩 개인병원에 파견 보내서 근무하게 해야 한다”며 “공무원들이 의사들보다 메르스 환자를 더 잘 구분할 것 같다”고 비꼬았다. 미국에서 내과의사로 근무 중인 이항종 씨도 “지난 3주간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메르스 감염 질환과 우리 정부의 미숙하고 어처구니없는 소식과 그들의 무지함, 무식함을 접했다”며 “의료문제는 의료전문가들에게 일임하고 다른 지원 시스템으로 의료인들을 도와야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의사는 호구라는 걸 느꼈다”고 댓글을 올렸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의사들을 마치 죄인 다루듯 하는 복지부의 태도는 옳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뒤늦게 의사들의 협조에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다.

노기섭 기자 mac4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