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국내 기업 ‘경영권 역차별’ 없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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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이번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대해 삼성물산 주식의 7.12%를 보유한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결국 반대 의견을 법정으로 몰아갔다. 엘리엇이 합병에 반대하고 나서는 표면적인 이유는 합병 무산이 아니라 그 조건에 대한 불만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 ‘1 대 0.35’인데, 이것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과소평가한 것으로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는 것이다.

비상장기업의 경우에는 그 가치 산정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상장기업의 가치는 주식시장에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합병 조건을 정할 때 주가를 이용하면 된다. ‘자본시장법’에서도 상장기업의 합병 가액은 일정 기간의 거래량 가중 평균주가를 준용토록 돼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모두 상장기업이다. 따라서 엘리엇이 합병 비율을 문제 삼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엘리엇의 삼성물산 주식 보유는 경영 참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실제로는 시세 차익을 극대화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이번 합병으로 삼성의 순환출자 구조는 오히려 단순화되며, 이것은 정부가 원하는 방향과 일치한다.

이번 합병과 관련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5% 보고 제도’다. 이것은 기업에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다. ‘자본시장법’은 상장법인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5% 이상 보유하게 되면 반드시 금융 당국에 신고 하도록 돼 있다. 이번에 엘리엇은 이 5% 룰을 어겼다. 그러나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 금융 당국은 위법한 엘리엇에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반드시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5% 보고 제도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헤지펀드는 본질적으로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자본이다.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의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위협한 뒤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팔고 떠나는 것이 기본적인 속성이다. 실제로 엘리엇은 이러한 투기적 행위로 매우 유명하다. 헤지펀드들이 경영권 분쟁을 조장한 뒤 주가가 오르면 시세 차익을 챙기고 떠난 일이 국내에서 이미 여러 번 있었다. 2003년 소버린 펀드가 SK를 공격했고, 이듬해인 2004년 영국계 헤지펀드인 헤르메스가 삼성물산, 2006년 칼 아이칸이 KT&G를 공격했다.

국내 기업들이 외국의 투기자본에 노출되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많은 경영 자원을 투하할 수밖에 없다. 귀중한 자원을 경영권 방어에 쓰게 됨으로써 기업에 손해가 됨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따라서 국제적인 투기자본으로부터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과 일본 등에서 활용되고 있는 황금주나 포이즌 필 등과 같은 기업 경영권 보호 수단의 도입을 고려할 때가 됐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은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을 없애는 것이다. 지금 공정거래법에 의해 금융계열사 의결권이 15%로 제한돼 있고, 금산법(金産法)에 의해 금융기관이 다른 회사의 주식을 20% 이상 보유하거나 5% 이상 보유하면서 그 기업집단이 사실상 지배하는 경우 초과분을 매각하거나 금융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로 인해 국내 자본이 크게 제한받아 외국자본과 효과적으로 경쟁하지 못해 국내 기업집단의 경영권 방어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외국자본과 국내 자본의 공정한 경쟁을 도모하며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제도와 금산법을 개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