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국가기밀 활동비까지 공개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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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 이화여대 교수·행정학

제19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가 회기 100일 기한으로 1일 시작됐다. 그러나 직전 8월 임시국회는 공전(空轉) 끝에 종료되고 말았다. 산적한 현안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여야(與野)의 이해득실에 따라 해묵은 특수활동비 논란으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특수활동비가 무엇이길래….

정부 예산은 강제적으로 징수한 세금을 재원으로 해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의 의결을 거쳐 행정부가 집행한다. 따라서 국민에 대한 책무성 확보를 위해 예산의 내용과 운영은 일정한 원칙에 따라야 한다. 이러한 규범을 예산의 원칙이라 한다. 나라 살림인 예산은 행정부가 편성하고 국회가 심의 의결함으로써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는 대통령중심제 예산 제도의 기본 모형에 충실해야 한다. 예산편성 원칙의 기본은 투명성 확보다. 모든 정부 지출 내역은 예산에 포함돼야 하고 예산의 효율적인 통제와 효과적인 관리를 위해 예산은 하나의 주머니로 구성돼야 한다. 예산 투명성 원칙은 정부 활동에 관한 신뢰할 만하고 포괄적이며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또 국제적으로도 비교 가능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원칙에는 예외가 있다. 예산에 모든 내역을 포함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서는 민간투자사업(BTL, BTO 등)이나 공기업투자사업, 또 64개에 이르는 기금을 통한 정부 지출이 이뤄지기도 한다. 하나의 주머니로 나라 살림을 편성해 효율적인 예산편성과 효과적 관리를 하도록 한 원칙도 18개에 이르는 특별회계와 64개의 기금 등 여러 주머니가 탄력적 예산 운용을 위해 동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316개에 이르는 공공기관도 정부 재정사업에 자주 동원된다. 예산 투명성 및 공개 원칙에도 예외가 있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지출의 경우 총액으로 편성, 의결해 기밀을 보장하는 것은 대다수의 나라가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특히,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안위와 관련된 지출의 일정 수준 비공개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 국회에서 논란의 한가운데 있고 주기적으로 반복돼 왔지만 고쳐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 특수활동비라는 항목이다. 특수활동비의 존재 근거는 기획재정부 ‘예산 운영계획 지침’에 나와 있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라는 규정이다. 처음 등장한 게 1994년이고, 당시 판공비에서 업무추진비와 특수활동비가 분리됐는데, 증빙 자료도 제출해야 하고 인터넷에 내역도 공개되는 업무추진비와 달리 특수활동비에는 이런 의무가 전혀 없다. 올해 예산에 책정된 특수활동비는 8800여억 원에 이른다. 문제는 예외의 타당성이다. 국방부나 국가정보원 그리고 국가기밀을 다루는 기관에 대해서 그 지출 내역을 낱낱이 공개하는 것이 득(得)보다 실(失)이 더 큰 경우에는 이 제도의 존재 이유에 수긍하게 된다.

하지만 예외를 만들어 놓으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꼭 생기곤 한다. 정치권의 이 특수활동비도 ‘쌈짓돈’으로 사용돼 온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 수사를 통해 정치인들이 특수활동비를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져 횡령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아무리 살펴봐도 국가 안위나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나 사건 수사 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국회 등 정부기관의 특수활동비 존재 이유에 대해서는 그 근거를 찾기 어렵다. 특수활동비 논란은 정공법(正攻法)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