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혁신적 발상 요구하는 파리기후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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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 / 서울대 교수·경영학

지구 기후변화에 대한 협약은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처음 열렸지만, 당시 협약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강제성 및 법적 구속력이 없었다. 5년 뒤인 1997년 12월 교토협약에서는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여섯 종류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할 뿐만 아니라,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제재도 가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국회도 2002년 11월 조약을 비준했으나, 당시 한국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온실가스 감축 의무는 없었다.

지난 12일 전 세계 195개 당사국이 파리에서 체결한 ‘기후 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은 내용과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가장 중요한 내용은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섭씨 2도보다 ‘훨씬 작게’ 제한하는 것이다. 성격 역시 이번 협정은 법적 구속력은 물론 5년마다 당사국이 탄소 감축 약속을 지키는지를 점검하기로 했다.

한국은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으로는 세계 20위지만, 연료 연소에 의한 CO₂ 배출량 기준으로는 세계 7위이고, 특히 지난 20년간 연평균 배출량 증가율은 3.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1위이다. 이번 총회에서 한국은 2030년까지 배출 전망치 대비 37%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벌써부터 파리협정에 대한 산업계의 반발이 만만찮다. 그런데 이번 협정은 다행스럽게도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195개 국가가 동시에 풀어야 하는 문제다. 비록 우리에게 상당한 비용이 발생하겠지만, 우리의 경쟁자들 역시 똑같은 상황이다. 그리고 이번 협정은 회피하거나 연기할 방법도 없다. 결론적으로 이번 파리협정은 얼마나 창조적이고 혁신적으로 대처하느냐의 문제다.

한국 정부는 먼저 싱가포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싱가포르 정부는 최저임금을 10% 이상 인상하는 전략을 택했다. 전대미문의 위기로 생존조차 힘든 기업들에 상당한 타격을 주는 조치였지만, 싱가포르는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빠르게 산업 구조를 고도화시켰다. 더는 저임금에 의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싱가포르 기업들이 발 빠르게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파리협정을 활용해 방대한 배출가스 및 에너지 관련 글로벌 시장을 한국이 선점할 수 있는 창조적 방안들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한국 기업 역시 혁신적인 발상 전환을 해야 한다. 그것은 높이뛰기와 장대높이뛰기의 차이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12년 높이뛰기 세계 기록은 미국의 조지 호린 선수가 세운 2.00m였다. 이후 100년 동안 선수들은 신발을 바꾸거나, 체중을 줄이거나, 점프 방식을 바꿔서 겨우 0.45m를 올렸다. 하지만 장대높이뛰기의 세계 기록은 1994년 우크라이나의 세르게이 붑카가 세운 6.14m다. 높이뛰기로는 100년 동안 불가능했던 높이를 일순간에 세 배나 올렸다. 배출가스 감축 노력도 같은 이치다. 현재 방식을 창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37% 절감은 15년이 아니라 100년이 걸려도 불가능할 수 있다. 기업들은 신발 끈을 졸라매는 노력 대신 장대를 찾아야 한다.

기업이 아무리 창조적으로 노력해도 정부의 제도적인 보완 없이는 무의미해진다. 연초부터 시행한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아직도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파리협정을 계기로 정부와 기업이 더욱 열린 자세로 소통해 온실가스는 줄이고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높이는 창의적인 대처 방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