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책임 떠넘긴 한노총… “정부주도 개혁” 목소리 커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판 깨질 위기’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음식점에서 열린 ‘국책연구기관 신년인사회 겸 간담회’에 참석한 이기권(왼쪽)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개혁 추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11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 제61차 중앙집행위원회를 마치고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무거운 표정으로 회의장을 나서는 모습. 뉴시스·연합뉴스

노사정위 불참 일주일 미뤄
합의통한 개혁 사실상 불가능

정부 “기득권 지키기에 실망”
2대지침 등은 계속 추진할듯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 합의 이후 17년 만의 노사정 대타협이 한국노총의 ‘파탄’ 선언으로 파국을 맞았다. 이 가운데 청년실업 해소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 주도의 ‘한국판 하르츠 개혁’ 추진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노총은 11일 제61차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공식적으로 9·15 노사정 대타협의 ‘파탄’을 선언했다. 그러면서도 최종적인 노사정위 불참 선언은 18일로 미뤘다. 1주일 동안 정부가 5대 노동개혁 입법과 저성과자 해고·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등 2대 지침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한다는 결정을 하지 않는다면,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노사정위 불참과 조직적 투쟁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데는 노사정 대타협 파기 책임을 정부에 떠넘기려는 의도가 작용했다. 정부에 1주일의 마지막 기회를 준 만큼 한국노총이 노사정위 불참 결정을 하면, 그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최두환 한국노총 부위원장은 중집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노총은 노사정 합의가 지켜질 수 있도록 인내를 가지고 노력했으나, 정부는 신뢰를 깨는 행위를 지속했다”며 “대타협 파탄의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여당에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날 결정을 두고 ‘파기’가 아닌 ‘파탄’이라는 용어를 쓴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부가 이미 ‘파기’한 노사정 대타협을 한국노총은 실제로 파탄 났다고 확인한 데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변화를 보일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1주일 만에 정부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정부에 우리가 한 번 더 참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이고, (노사정위 불참 선언의) 명분을 가지려고 오늘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12일 오전 열린 ‘주요 학회장 및 국책연구원장 간담회’에서 한국노총의 행보와 관련해 “한국노총 내 고용안정과 괜찮은 근로조건을 가진 일부 연맹이 기득권 지키기 차원에서 대타협 대의를 저버리는 조직 이기주의”라며 “노동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사명”이라고 말했다. 또 “5대 입법과 2대 지침 등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것이 노사정 주체가 할 일”이라며 “한국노총은 합의 파기, 노사정위 탈퇴 등 명분 쌓기 차원에서 접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쟁점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자는 한국노총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한 셈이다.

대타협을 통한 노동개혁이 어려워지더라도 정부가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성장과 저출산, 청년실업난이 지속하는 가운데 올해부터 정년 60세 의무화 제도가 시행돼 청년고용 절벽이 예상된다. 이에 더해 미국 금리 인상, 중국 증시 폭락, 저유가 등 대내외 경제 상황으로 향후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던 독일을 유럽의 강국으로 도약시킨 ‘하르츠 개혁’은 정부 주도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다. 해고요건 완화와 임시직 확대 등 고용 유연성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한 개혁을 통해 독일은 10%를 웃도는 실업률을 절반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는 국민이 실제 경제 위기 상황을 덜 체감하는 가운데 선제적 노동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면, 2016년 들어 거시경제 악화로 지난해보다 노동개혁의 필요성이 더 절절하다”며 “위기 상황을 제대로 진단해 국민에게 노동개혁의 절박성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