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톡>긴장감 속 연신 폭소… 용서·화해 메시지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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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겨울 이야기’

“수백 년 된 텍스트를 현대에 걸맞게 연출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헝가리 실험 연극을 이끄는 연출가 로버트 알폴디가 국립극단과 함께 한국 관객들이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셰익스피어를 선보였다. 이 ‘당연한 일’은 사실 도전이기도 한데,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은 현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지난 10일부터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겨울 이야기’는 희극과 비극을 넘나들며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한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 감독이 “오늘날 한국사회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건 화해”라고 했으니, 극단의 올해 첫 작품은 ‘타당한 도전’으로 보인다.

1막 전체를 압도하는 건 시칠리의 왕 레온테스의 ‘광기’. 친구인 폴리세네스와 아내 헤르미오네의 관계를 의심한 그는 왕비를 감옥에 가두고, 갓 태어난 딸 페르디타를 성 밖으로 내다 버린다. 레온테스의 격정적인 질투는 무대 전환 한 번 없는 1막을 버라이어티하게 채우는데, 자극은 세고 전개는 빨라 1시간이 10분처럼 지나간다. 맹신의 파괴력은 강력했다. 레온테스는 모두를 비극으로 몰아넣으며, 1막을 끝낸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2막이 갑자기 희극으로 전환되는 것인데, 그 사이 무려 16년을 삭제시키는 셰익스피어의 과감함과 알폴디의 기발한 연출 기법에 무릎을 치게 된다.

‘겨울 이야기’는 셰익스피어 후기 작품이다. 로버트 그린의 ‘판도스토:시간의 승리’를 각색했다 ‘오셀로’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한여름밤의 꿈’의 판타지적 요소가 모두 뒤엉켜 있다.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는 구성은 ‘성공한’ 극작가의 여유로 간주 되기도 한다. 백정국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개연성이라는 정교하게 디자인된 세련된 옷을 거추장스럽다고 의도적으로 벗어던진 듯한 인상을 준다”고 분석했다.

1막엔 긴장감이 넘치지만, 2막에선 연신 폭소가 터진다. 뮤지컬처럼 춤과 노래가 이어지기도. 레온테스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페르디타는 양치기가 아닌 친아빠(레온테스)를 만난다.

하이라이트는 헤르미오네의 동상을 담은 수조의 물이 ‘쏴아’ 하고 쏟아지는 순간. 생략된 16년 동안 각자 지나온 고통의 시간과 인생사의 아이러니 등이 함께 흐른다. 시각과 청각이 어우러진 이 ‘신선한’ 경험은 예상을 하고 본다 해도 오감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객관적인 수작이지만 취향에 따라 호불호는 나뉜다. 알폴디는 미리 밝혔다. “자기 머릿속의 세상이 무대 위에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보면 열린 마음으로 공연을 볼 수 없다.” 셰익스피어는 진지해야만 한다고 믿는 관객이라면, 발길을 돌려라. 손상규, 박완규, 우정원, 정현철, 이종무 등 출연. 24일까지. 1644-2003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사진 = 국립극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