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영국의 EU 탈퇴 ‘브렉시트’ 논란과 파장

브렉시트로 佛·덴마크도 들썩… 동조 땐 ‘EU 붕괴’ 위기
세계경제 ‘퍼펙트 스톰’ 우려… 수출의존 높은 韓 ‘직격탄’

영국이 오는 6월 23일 국민 투표에서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국민 투표는 앞으로 4개월이나 남아 있지만 브렉시트는 영국 국내뿐 아니라 EU, 세계에서 주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영국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 등 유력 정치인이 대치하고 있고, 국민 여론도 양분된 상태다. EU 내에서는 브렉시트가 발생할 경우 덴마크, 체코, 프랑스 등 추가 이탈국이 나오면서 EU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브렉시트 발생 시 영국과 EU 경제가 흔들리면서 올해 들어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브렉시트가 논의되는 배경과 찬반 진영 논리, 브렉시트 발생 가능성, 향후 정치·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점검해본다.

1 브렉시트 논의 역사

영국이 브렉시트를 논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영국은 지난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2년 만에 EEC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를 실시, 67% 찬성으로 잔류한 바 있다. 이어 약 40년 만인 2013년 캐머런 영국 총리가 “2017년까지 브렉시트 국민 투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으며, 2015년 5월 총선에서는 EU와 회원국 지위 변화를 위한 협상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캐머런 총리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국민 투표 실시는 기정사실화됐다. 그는 지난해 12월에는 국민 투표 실시 시기를 2016년으로 앞당길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지난 19일 EU 정상회의에서 영국의 EU 잔류를 위한 협상안이 최종 타결됨에 따라 협상안에 대한 국민 투표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2 영국과 EU 간 협상 타결 내용은

캐머런 총리가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정상들과 타결한 ‘EU 개혁 합의안’ 내용으로는 △EU 통합 강화에 대한 선택적 적용(옵트 아웃·opt-out) △EU 이주민 복지혜택 축소 △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인 영국을 위한 안전조치(safeguards) 마련 등이 포함됐다. 이중 영국 내 EU 이주민 복지 제한은 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4개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합의에 난항을 겪어 왔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비 유로존인 영국에 대한 금융규제 예외 적용 등에 불만을 표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유럽통합을 위한 영국 잔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로 협상안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3 EU 잔류 주장 진영과 이유

영국 경제계에서는 잔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198개 영국 기업의 이사회 의장 또는 CEO들은 23일 더 타임스에 EU 잔류를 호소하는 광고를 실었다. 정치권에서는 브렉시트를 놓고 여야가 아닌 여당 내 대립 양상이다. 야당인 노동당과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잔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BBC에 따르면 노동당은 하원의원 220명 중 213명이 잔류를, SNP는 54명 전원이 잔류 지지를 밝혔다.

반면 여당인 보수당은 잔류파와 탈퇴파로 나뉘었다.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잔류파에는 보수당 하원 의원 330명 중 142명이 함께 해 절반을 간신히 넘긴 수준이다. 입장을 유보한 의원이 68명이나 된다. EU 잔류를 주장하는 측은 EU에 남는 것이 경제적·정치적으로 이익이라는 점을 든다. 영국 수출의 절반 정도가 EU로 향하는 상황에서 EU를 벗어날 경우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EU가 50여 개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의 이점을 잃게 된다는 점과 금융 중심지인 런던 시티가 와해될 수 있다는 점도 잔류파의 논리다. 또 테러 위험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EU 탈퇴는 영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논리도 내세우고 있다.

4 EU 탈퇴 주장 진영과 이유

영국 경제계 중 중소기업들에서는 탈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크다. 영국의 EU 가입이 대기업이나 금융업계에만 이익이 되고 있다는 불만이 큰 탓이다. 정치권에서는 보수당 내에서 탈퇴 주장이 적지 않다. 내각에서는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 등 장관 6명이 탈퇴 지지를 밝혔다. BBC에 따르면 이들을 포함해 보수당 하원 의원 330명 중 120명이 탈퇴 쪽에 서 있다. 특히 대중적 인기가 높아 차기 총리감으로 여겨지던 존슨 런던 시장이 탈퇴 지지를 분명히 하면서 진영이 강력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들은 EU 규제 때문에 영국 경제 발전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탈퇴 주장론자들은 EU 규제로 인해 영국이 부담하는 비용이 한해 333억 파운드(약 57조 원)에 달한다고 지적한다. EU 이사회에서 영국 투표권이 8%에 불과하다 보니 독일과 프랑스 주도하에 주요 결정이 이뤄지는 점도 문제점을 꼽는다. EU 회원국의 경제난과 난민 사태 대응 부족 역시 EU 탈퇴 주장으로 내세운 이유다. 경제난으로 동유럽 노동자들이 대거 영국으로 몰리면서 일자리와 복지 혜택이 줄어들고, EU의 난민 통제 실패로 난민 위기가 영국으로까지 번진다는 것이다.

5 영국 내 여론은

영국 국민들의 여론은 비등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4일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조사업체 유고브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응답자가 38%, EU 잔류를 지지하는 응답자가 37%였다고 보도했다. 유고브가 16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 탈퇴 지지가 45%로 잔류 지지 36%를 크게 앞섰던 것과 비교하면 브렉시트 지지율은 이번에 7%포인트 하락했다.

6 향후 진행 절차는

영국 선거관리위원회는 브렉시트 찬반 국민 투표 관련 절차를 3월 4일부터 실시한다. 공식적인 EU 탈퇴·잔류 선거운동은 4월 15일부터 시작된다. 이 과정을 거쳐 브렉시트 찬반 국민 투표는 6월 23일 실행된다. 국민 투표에서 EU 탈퇴 결정이 날 경우 곧바로 EU의 출구 조항인 ‘리스본 조약 제50조’에 따라 탈퇴 절차가 진행된다. 제50조에 따르면 EU 탈퇴를 원하는 회원국의 정상은 유럽정상회의에 탈퇴 의도를 분명히 밝히는 성명서를 보내야 한다. 이후 2년 동안 남은 27개 회원국과 향후 EU와 탈퇴국가의 관계를 정립하는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2년 안에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27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협상 기한 연장을 타결하지 않는 이상, 탈퇴국가는 EU 회원국으로서 누리는 이점을 자동적으로 박탈당한다.

7 EU 탈퇴 시 영국 내 영향은

국민 투표에서 EU 탈퇴가 결정되면 영국은 정치적·경제적으로 상당한 후폭풍에 휘말릴 것이 명약관화하다. 당장 EU 잔류를 주장해 온 캐머런 총리로서는 탈퇴 결과가 나올 경우 사퇴가 불가피하다. 또 브렉시트 문제를 놓고 갈등이 깊어진 보수당 내분 문제도 상당기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탈퇴 결정 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스코틀랜드 독립 문제가 다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최근 BBC 방송 인터뷰에서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스코틀랜드는 영국에서의 독립을 재추진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밝혔다. 경제적 충격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 우려가 커지자 파운드화 가치는 7년 만에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EU 탈퇴 시 영국 경제가 받을 피해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100여 명의 이코노미스트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은 75%였지만, 이익이 된다는 응답은 8%에 그쳤다. 독일 싱크탱크 베텔스만은 영국이 EU를 탈퇴할 경우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14%에 해당하는 3130억 유로(약 426조 원)를 잃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4일 영국 관련 보고서에서 영국 경제의 위험 요소 중 하나로 EU 잔류·탈퇴 국민 투표를 지목했다.

8 덴시트, 첵시트, 프렉시트 우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 투표 실시 발표 이후 덴마크와 체코 등에서 줄지어 EU 탈퇴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U 회원국 중에서는 그리스가 지난해 7월 채권단과의 구제금융안 협상 문제로 유로존 퇴출, 이른바 그렉시트 가능성이 대두된 바 있다. 이번에 브렉시트가 기정사실이 되면 덴시트(덴마크의 EU탈퇴)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전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유로존에 편입되지 않은 덴마크는 EU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민족주의 세력이 득세하는 체코에서도 첵시트(체코의 EU탈퇴) 논의가 대두되고 있다.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체코 총리는 “영국이 EU를 떠나면 체코에서도 수년 뒤 EU를 떠나는 문제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리 르펜 대표가 EU 탈퇴를 주장해왔으며, 특히 지난해 11·13 파리 연쇄 테러로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커진 틈을 타 프렉시트(프랑스의 EU탈퇴)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지난해 의회에서 유로존 탈퇴 청원이 제기된 핀란드와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보수정당이 집권한 폴란드도 EU 탈퇴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유럽 현지 언론들은 “브렉시트 국민 투표 소식이 전해진 이후 다른 회원국들이 하나둘씩 탈퇴 대열에 서면서 EU의 통합 정신이 흐려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9 세계 경제 악재될까

영국의 EU 탈퇴의 경제적 후폭풍은 영국을 넘어 EU와 세계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소시에테제네랄은 브렉시트 발생 시 EU의 GDP가 매년 0.25%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소시에테제네랄은 브렉시트가 중국 경착륙보다 유럽 경제에 2배 정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규모 세계 1위인 EU가 흔들리게 되면 연초부터 불안한 행보를 보이던 세계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중국 경기 둔화와 유가 하락, 신흥국 위기, 유럽 은행 위험 상승 등 각종 위험 요소에 노출된 상황에 브렉시트란 악재마저 겹치면 세계 경제는 난국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또 2008년 위기 때와 달리 경기 회복을 위한 국제적 협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브렉시트는 각국 간 공조를 더욱 약화시킬 수 있다.

10 한국 경제 영향은

브렉시트로 세계 경제가 흔들리게 되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은 그렉시트(그리스의 EU 퇴출) 발발로 국제 금융시장 혼란 지속 시 우리나라 성장률이 충격 1년 후 1.7∼2.7%포인트 하락하고, 주식 가격은 16.5∼26.5% 떨어지며, 자본 유출은 GDP 대비 1%(14조∼15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스보다 경제규모가 큰 영국의 EU 탈퇴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이보다 클 것이 자명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수출 중 EU가 차지하는 비중은 9.1%다. 대 EU 수출 중 영국의 비중은 15.4%로 높은 수준이다. 또 국내 상장 주식 중 영국계 투자자 보유 지분은 1월 말 현재 8.01%로 미국(40.02%) 다음으로 높다. 브렉시트로 영국 실물 및 금융 경제가 요동칠 경우 우리 경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석·김리안 기자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