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사랑스러운 삶은 ‘비애속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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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란 시집 ‘이별의 메뉴’

최명란(54·사진)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이별의 메뉴’(현대시학)를 펴냈다. 표제작을 비롯해 ‘지퍼에게’ ‘복합과거’ ‘달콤한 소유’ 등 69편의 시를 모았다. 시인은 2005년 등단 이래 삶의 비애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고, 생명력을 내뿜는 시를 발표해 왔다. 이는 ‘쓰러지는 법을 배운다’ ‘명랑생각’ 등 그의 앞선 시집 제목에서 잘 드러난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역설과 반어, 은유를 통해 명랑의 정신을 이어갔다. ‘시인의 말’에는 “삶은 혹독하다가도 사랑스럽다. 내가 사랑하는／나를 사랑하는／그대, 서로 마주 보는 힘!”이라고 썼다. 사랑이 존재하는 한 시련은 결코 그를 쓰러뜨리지 못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이런 메시지를 주로 대립적 이미지를 빌려 그렸다. 그의 시에서 삶과 죽음, 낮과 밤, 여름과 겨울, 남과 북은 맞서지 않고 맞댄다. 서로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 수록시 ‘지퍼에게’에서 “아귀를 꽉 닫아야 이빨이 더 단단해지는／지퍼”는 반대편 지퍼에게 “당신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별이 되는 동안／꽉 물리지 않은 나는 오늘도 혼자 고꾸라진다”고 손을 내민다. ‘달뿌리풀’에서 시인은 “모서리와 모서리에서 물이 만나면 오래도록 머문다”면서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나는 자리에서 당신을 만나／마디를 맞대고 못다 한 긴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라고 고백한다. 냉기와 온기도 마찬가지다. 상반된 두 기운은 밀어내지 않고 더 강한 접착력을 보인다. “냉기와 온기가 만날 때／순간 쩍 달라붙는 습성이 있는 걸 보면／아무래도 가장 먼 거리가 가장 짧은 거리입니다. (중략) 그의 냉기와 나의 온기가 만나／다시 한번 쩍 달라붙어 볼 수 있다면／냉동실의 빵처럼 꺽꺽 씹어볼 수 있다면”(시 ‘주문’ 중에서)

시인은 이 어우러짐을 알기에 고통이 와도 좌절하지 않는다. “나의 불면은 그대가 내게 준 아름다워 쓰린 선물／그대의 불면은 내가 그대에게 준 안타까워 아린 선물”(시 ‘비행’)이라 말하는가 하면, “누군가의 늘어가는 주름을 보면서 아마／우리는 날마다 다시 태어남을 볼 것이다”(시 ‘계속과거’)라고 역설한다. 지하철과 레일을 통해 이별을 만남으로 승화한 시 ‘근접과거’는 그 명랑의 절정이다. “몸과 몸을 포개는 일은 어제와 오늘이 만나는 일입니다／수없이 헤어져야 수없이 다시 만납니다／그래서 이별은 간혹 달가운 일입니다. (중략) 레일은 밤낮 길게 누워 지하철을 기다립니다.”

문학평론가 김종회 경희대 교수는 시집 ‘해설’에서 “그의 시는 하나의 인생론적 교범이요, 정신적 성장사의 궤적을 밝히는 예인 등대의 불빛과도 같다”고 평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