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한국미술인가’ 이전에 로컬과 글로벌담론 공유가 중요
난 개인적으로 ‘검열’에 반대 입장… 작가는 사회 반향에 책임감 가져야
뜨거운 열정 지닌 한국 작가 인상적… ‘새로운 가능성 실현’열망·도전 느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올 상반기 중에 자신이 직접 기획하는 2017년 전시 스케줄을 확정짓겠다고 말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지난해 겨울 취임 후 벌써 3개월이 다 돼간다. 그동안 특별히 어려운 일은 없었나.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재임해 본 소감을 말해달라.
“매일 매일이 바쁘다. 오늘만 해도 아침 8시에 과천 청사로 출근해 멕시코 미술관 관계자와 미팅을 했고, 학예실장과 전시 관련 논의를 했으며, 큐레이터 전체 기획회의를 했다. 그리고 곧바로 인터뷰를 위해 이곳 서울관으로 다시 왔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직접 근무해 보고 느낀 것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흥미로운 곳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큰 열망과 도전을 자극한다. 전에 근무했던 스페인 미술관에 비해 새로운 가능성과 아이디어를 실현할 기회가 더 많다는 확신이 들었다. 특히 현대미술을 많이 다루는 서울관, 근대미술품을 만날 수 있는 덕수궁관 그리고 이를 포괄하는 과천관 등 3개 관이 서로 다른 성격의 전시를 해 폭넓은 역사적 시각으로 전시를 기획할 수 있다.”
―취임 당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근현대 미술의 내러티브(이야기)가 아직 생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서 “유능한 작가와 작품들이 많지만, 이를 연결해 주는 집합적인 연결고리는 없다”고 말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나.
“한국의 작가들을 만나보면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역시 세계미술의 장에서 중심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무엇이 한국미술인가’ 자문하기 이전에 세계적인 미술 흐름과 연결되는 ‘내러티브’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외국에 알릴 한국만의 내러티브가 부족하다. 현대의 글로벌 세계에서는 미술을 국가별로 구분하거나 특정 짓는 것이 의미가 없다. 세계 미술계의 주요 담론과 공유점을 찾아야 한다. 로컬에서 글로벌로 가는 것. 한국의 지역성이 어떻게 세계의 담론들과 연결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충분히 많은 작가들을 보유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도 그 같은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취임을 즈음해 외국인 미술관장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많았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신의 장점을 무엇이라고 보는지.
“사실 외국인 관장으로 약점보다는 기회가 더 많다고 본다. 또 많은 약점들이 있지만 이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헌신하겠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미술계의 파벌·학벌을 타파해주기를 기대하는 분들이 많다. 이곳에서도 나는 이전 미술관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의 신념을 지켜갈 예정이다. 미술관에서 가장 강조할 것은 작품의 질을 말하는 퀄리티, 주제의 흥미로움과 우아함(elegant) 등이다. 이것이 파벌·학벌 문제에 대한 내 답변이다.”
―한국작가들과의 소통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시선들도 많았다. 한국작가들은 얼마나 알고 있나.
“매해는 아니지만 그동안 주기적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잘 알려진 한국작가들의 전시도 많이 보았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한국 작가, 큐레이터, 컬렉터들도 많이 만나보고 함께 일도 했다. 그래서 지난해 12월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임명돼 한국을 찾았을 때도 서울이라는 도시가 낯설지 않았고, 한국미술계도 친밀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가 한국미술 전문가라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 미술관 안에 한국미술 전문가들이 많이 계시고, 그분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리고 한국미술에 대한 모자란 지식을 채우기 위해 틈틈이 한국 작가의 책을 읽고, 주말에는 전시를 많이 보러 다닌다.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작가 스튜디오도 많이 찾았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데 한국어 공부도 계속하고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간단한 한국어는 읽을 수 있다. 앞으로는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배울 예정이다.”
마리 관장은 모두 8개 국어에 능통하다. 영어, 불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에 자신의 고향인 스페인 남부의 카탈루냐어까지 능숙하게 구사한다. 이제 한국어까지 익히면 9개 국어를 ‘마스터’하는 셈이다. 그는 “한국어도 그렇지만 모든 외국어는 어렵다(웃음)”며 “고등학교 재학시절 라틴어를 익혔기 때문에 그나마 서로 공유하는 것이 많은 유럽의 언어들을 익힐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장 재직 시절 ‘정치 검열’ 의혹이 제기돼 한바탕 국내 미술계에 소동이 인 적이 있다. 정치 검열에 대한 국내 작가들의 우려를 어떻게 해소해 나갈 생각인가.
“당시 전시자가 특정 정보를 숨겼기 때문에 전시가 지연됐고, 나는 지연에 대한 책임으로 사임한 것이다. 나는 미술관장으로서 아티스트를 최대한 지지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을 계획이다. 아티스트들의 비판적 시선을 환영할 뿐만 아니라 이는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요소다. 그리고 30년 기간 미술계에서 일하는 동안 나의 가장 큰 장점은 항상 작가 친화적이었다는 것이다.”
―관장은 미술관 운영은 물론 전시 기획까지 모두 책임져야 하는 자리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현직 대통령을 희화화한 작품이,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미 대사 피습사건을 옹호하는 작품이 걸렸다가 다시 철거되는 사태가 발생했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광주비엔날레, 서울시립미술관 사태는 들어서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내가 새롭게 해석하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들이다. 단지 2014년 당시 그 일로 광주비엔날레 대표가 사퇴한 사실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원칙만 얘기한다면 작가는 표현의 자유를 고수하기 위해서라도 ‘책임감’을 갖고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작업 결과물을 사회에 보여주었을 때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만 지킨다면 된다. 개인적으로 검열은 완전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한국미술사에서 표현의 자유와 검열 문제를 거론할 때면 늘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것이 민중미술 작가다. 앞서 광주비엔날레와 서울시립미술관 사태도 한 민중미술작가에 의해 야기된 것이다. 한국의 민중미술에 대해 어떻게 보나.
“민중미술을 국내 미술사조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1960년대 후반에 세계적으로 나타났던 정치적인 팝아트와 연결해 봐야 한다. 직접적으로는 다른 나라에 있는 비슷한 경향의 미술사조와 비교해 보고 또 보다 넓은 세계적인 미술사 관점에서 민중미술이 가지고 있는 함축적 의미나 가능성을 밝히는 것도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국내 주요 화랑을 중심으로 민중미술 재조명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이에 대해 미술계 일각에서는 지난해 시장에서 열풍이 불었던 단색화를 이어갈 새로운 장르로 민중미술이 선택됐다는 분석이 대세인데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민중미술에 대한 기획 전시를 할 수 있나.
“물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민중미술 부활 움직임이 있다고 해 전시를 하지는 않겠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세계 어느 미술관이나 미술은 시장과는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미술관이 그 같은 트렌드를 쫓아가서 전시를 기획해서는 안 된다. 특히 경제적 문제가 미술관 전시에 영향을 줘도 안 된다. 미술관은 근현대 미술사를 정리하고 규명하는 ‘더 폭넓은 역사적 시각’에서 각각의 미술사조들을 바라보고, 전시를 기획해야 한다. 1995년도에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며 그동안 ‘운동’의 하나로 여겨졌던 민중미술이 미술사로 편입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술관은 그처럼 역사적 관점에서 작가에 대한 조명을 해야 하며, 한 가지가 아닌 여러 논쟁을 생산해내야 한다. 또 비생산적인 논쟁보다는 새로운 해석과 역사적인 서술을 내놓아야 한다. 역사는 살아 있어서 언제나 바뀌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술관은 언제나 이를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와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집무실에서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뒤에 걸린 그림은 공성훈 작가의 작품 ‘돌던지기’다. 신창섭 기자 bluesky@
―본인이 큐레이터 출신이고, 평소 큐레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해 ‘큐레이터 관장’이라는 얘기까지 돌았었다. 앞으로 어떤 전시를 선보이고 싶은가.
“2016년 전시는 이미 내가 오기 전에 다 만들어져 있어 역량을 발휘하는 데 제한이 있다. 그러나 전시가 잘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예정이다. 내가 기획하는 전시는 2017년, 2018년 전시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2017년 전시 스케줄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국미술에는 민중미술 작품이나 단색화보다 더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다. 더 넓은 관점에서 더 재미있는 주제로 충분히 전시를 기획할 수 있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미술가들은 세대별로 말하는 것이 다르고, 재료나 주제도 너무 다양하다. 이것을 바라보면서 무언가 하나로 종합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싶다.”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세계적 거장 이우환 화백의 작품에 대한 위작 시비로 국내 미술계가 시끄럽다. 외국에선 위작에 어떻게 대처하나. 요즘 화단에선 작품의 ‘유통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전작도록을 만들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위작 문제가 ‘인기’ 있는 주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작가가 살아있다면 작가가 직접 진위를 얘기하면 된다. 그러나 작고한 상태라면 전문가 손에 맡겨야 한다. 완벽한 전문가는 없지만 기관은 우선 전문가를 믿어야 한다. 미술관에서는 큐레이터가 전문가인 만큼 외부 전문가와 큐레이터 의견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진위를 판단해야 한다. 전작도록은 하나의 도구가 될 수는 있겠지만 예전에는 작품에 대한 철저한 기록을 남기는 작가가 드물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 어떠한 전문가에게도 오류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전문가에게 핵심적인 역할을 맡기는 것은 가장 바람직하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역시 계속 그 진위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얼마전에는 10여 년 가까이 “미인도를 본인이 그렸다(위작했다)”고 주장해온 이가 자신의 주장을 뒤집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있는 미인도를 공개할 생각은 없는지. 미술계는 이제라도 미인도를 꺼내 ‘공개 감정’을 다시 해야 한다며 ‘미인도를 공개하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개할 의도는 없다. 우리에게 보여줄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논란이 처음 발생할 당시 외부에 공개하지 않겠다고 이미 작가와 논의를 마쳤다고 들었다. 지금 작가가 없는 상태에서 결정을 뚜렷이 내리기 어렵다. 대중에게 공개를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시간을 두고 면밀히 검토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네덜란드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년경∼1516년 8월)라는 작가의 작품이 바로 그렇다. 아직도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해선 진위 논쟁이 뜨겁다. 우리 미술관의 공식적인 입장은 미인도에 관해서는 ‘전문가들에 의한 학술적 해결방안을 준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상상 속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즐겨 그렸으며 20세기 초현실주의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보스는 자신의 작품에 날짜를 기록한 적이 없으며,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서명도 하지 않았다. 다른 서명들도 그가 직접 남긴 것이 아니다. 게다가 보스의 그림 양식은 당시 매우 유행하여 위작들도 많이 생산됐다. 현재 그의 그림으로 확실히 인정받는 작품은 고작 25점뿐이다. 얼마전에는 캔자스시립미술관이 소장한 그림이 보스 것으로 여겨진다는 분석결과가 나와 전문가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아가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 것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이다. 생산이 중단된 브라운관 등의 교체를 비롯해 미술관이 보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품 보존에 대한 어떤 방안이 있는지.
“사실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TV 브라운관 교체가 유화 복구작업보다 더 어려운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미술관의 더 큰 문제는 20세기 초반에 그려진 국내 작가의 유화 작품을 어떻게 잘 보존해 우리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계속 가져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다다익선은 어떤 식으로든 충분히 보존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머리를 짜내고 연구를 많이 하겠다.”
―조금 다른 이야기다. 미술작품의 ‘2차’ 시장인 경매시장 활성화로 ‘1차’ 시장인 화랑들이 많이 힘들어한다. 이런 현상이 세계적인 추세인가?
“커다란 옥션 하우스들이 직접적으로 작가들에게 연결이 되면서 그동안의 전통적 방식의 예술시장은 분명이 바뀌고 있다. 특히 지난 5년 동안에 큰 변화가 있었다. 또 10여 년 전부터는 미술거래시장인 아트페어가 비엔날레만큼의 영향력까지 지니게 됐다. 미술 시장이 전에는 예술적 가치를 따라갔다면 요즘은 보다 더 경제적 흥미에 편승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진짜 큰 변화다. 예술 시장이 예술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적 흥미나 취향, 경제적 논리에 따라가고 그에 의해 가치가 판단되는 것은 크게 우려할 사항이다. 그리고 이런 때야말로 미술관이 중심을 잡고, 예술적 가치를 지켜가야 한다고 본다.”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3년이라는 시간은 미술관 주기로 보면 짧은 시간이다. 이 기간 중에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한국미술의 국제화다. 다양하게 세계적인 미술관과의 연계방안을 만들어 이를 실행에 옮기겠다. 개인적으로 수준 높은 작가들이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이들이 잠깐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남기는 등 교류와 접촉이 계속 이어지도록 하겠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세계적 미술관으로 발돋움하려면 작가들에게 보다 더 가깝게 다가가야 하며 큐레이터, 비평가, 수집가 등 미술계의 여러 주체가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본인이 생각할 때 가장 자랑스러운 전시가 있다면.
“오스트리아 출신의 라울 하우스만(Raoul Hausmann, 1886∼1971)이란 작가가 있다. 1930년대에는 내 고향인 스페인 이비사에서도 활동한 작가로 신문이나 잡지를 오려서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포토 몽타주(photomontage)와 음성시인 포네틱 포엠(phonetic poem)의 선구자로 통한다. 이 작가는 당시 아방가르드 경향에 영향을 많이 주었다. 나 역시 예술에 접근하는 시각과 관련해 이 작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작가는 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듣는 것 그 감각에도 초점을 맞추어 작업을 했다. 지금까지 서술된 미술사는 시각적 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을 중심으로 쓰여졌다. 그러나 앞으로 새롭게 쓰일 미술사는 시각적 감각뿐만 아니라 신체의 다른 감각들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작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본다. 이 작가의 전시를 1990년, 1995년 두 차례 기획해서 했다. 가장 인상에 남는 전시였다.”
―하우스만의 작품 전시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할 계획은 없나.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작품들의 성격상 옮기는 과정에서 손상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져오는 것이 가능한지 하우스만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과 협의해야 하는데 장거리 이동에 대한 어려움 때문에 쉽게 대여해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나, 주말은 또 어떻게 보내는지.
“사실은 지금 상황에서 미술관을 찾는 것 외에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거의 없다. 내가 미술관에서 일하는 동안 아내는 집에서 글을 쓴다. 그리고 주말에 틈이 나면 함께 서울 시내의 미술관을 찾아가는 정도다. 자녀는 없는데 안 갖기로 우리가 선택한 것이다. 날이 풀리면 아내와 함께 제주로 여행을 갈 계획이다. 특히 나는 섬 출신이어서 섬을 좋아한다.”
▲ 마리 관장에게 바란다
민경갑(화가·대한민국예술원 회장) = 미술관 직원들이 언어의 소통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사실 자연 해소될 수 있는 것들이다. 보다 근본 문제는 과연 마리 관장이 우리의 문화와 정체성을 얼마나 숙지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본다. 또한 중요한 것은 미술계와의 소통과 연결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특별자문기구를 관장 옆에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근현대 미술사를 정리하고 규명하는 더 폭넓은 역사적 시각에서 전시를 기획해야 한다는 마리 관장의 말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명옥(사비나미술관장·한국미술관협회장) = 마리 관장은 2016년 전시와 운영방침이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취임했다. 즉 자신만의 색깔을 나타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평가는 올 하반기부터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관장의 주요 업적 추진방향이 미술계에 전달되는 통로가 딱히 없다는 것이다. 이는 상당수의 미술인들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관심을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국가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미술관의 주체는 관장이나 학예사, 직원이 아닌 국민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박우홍(한국화랑협회장) = 마리 관장에게 세 가지 부탁을 꼭 하고 싶다. 첫째는 한국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는 학맥과 인맥에 따른 문제의 해소다. 이 부분은 이미 여러 사람들이 외국인 관장이 선임됨에 따라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둘째로는 네트워크의 형성이다. 국제미술계의 동향을 잘 파악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세계 미술시장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직접적 계기가 마련되기 바란다. 셋째로는 장기적인 시스템의 구축이다. 눈에 보이는 실적보다 장기적인 방향 구축과 선진화된 미술관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우찬규(학고재 갤러리 회장) = 국립현대미술관이 옛 틀을 깨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정부가 전례없이 외국인 관장을 선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아시아 시대가 열리며 세계미술계도 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마리 관장이 이 불씨를 고원의 불길로 이끌어주기 바란다. 한국의 현대미술이 세계인의 주목과 함께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 세계 현대 미술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전시를 기대한다. 장식성보다는 사회적 기능이 강한 미술이, 유희적 성격의 미술보다는 현실의 왜곡을 질타하는 미술이 미술사에 조명되고 시장에서도 대우받는다는 것을 확인시켜 달라.
최열(미술평론가) = 의욕적으로 미술관을 이끌고 나가려는 마리 관장의 노력을 높이 산다. 그러나 미술관의 자율성을 보장하기는커녕 군림하는 국내 관료체제에 무지한 상태에서 3년의 임기 동안 그저 좋은 전시기획이나 몇 차례 하고 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무엇보다도 당면한 과제인 법인화와 청주관 설립에 대해 분명한 의견을 표시해야 하며 계약직으로 넘쳐나는 학예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연구센터 연구직도 신설해야 할 것이다. 단 하나뿐인 국립현대미술관장 직은 전시기획 임무만 수행하는 자리가 아니다.
김홍남(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화여대 명예교수) = 국내에서는 마땅한 적임자를 찾지 못해 마리 관장이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왔다. 다행인 것은 뮤지엄에 대한 인식을 확실히 지닌 인사라는 점이다. 마리 관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와 뮤지엄에 대한 신념이 분명한 사람이다. 관료주의와 파벌이 지배해온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사정을 모르는 외국인이어서 그런지 이것저것 눈치 안 보고 헤쳐나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특히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큐레이터의 입지를 많이 살려 놓았다고 한다. 고무적인 일이다. 앞으로도 더욱 강력하게 밀고 나가라고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 2010년‘한·스페인 60주년展’방한… 유명 해외인사들 관장 추천
- 마리 관장의 한국과 인연
스페인 출생인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국립현대미술관장은 30년간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의 미술관에서 경력을 쌓았다.
스페인 남부의 휴양지인 이비사(Eivissa) 섬에서 1966년 태어나 바르셀로나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마리 관장은 브뤼셀 현대건축박물관의 큐레이터를 시작으로 발렌시아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네덜란드 현대미술센터인 비테 데 비트(Witte de With)의 예술감독을 거쳐 2008년 유럽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알려진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ACBA, Barcelona Museum of the Contemporary Art)에서 관장으로 활약했다.
1995년 개관한 MACBA는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 레이나 소피아미술관 등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스페인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주제별로 집중 수집해 차별성을 인정받아온 미술관이다.
7년간 MACBA를 이끈 그는 스페인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관람객 수와 입장 수익을 늘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강화해 해외 유수의 기관들과의 협력을 확충하는 등 탁월한 미술관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국제근현대미술관위원회(CIMAM) 회장직을 맡으며 현대미술에 대한 전문성은 물론 폭넓은 세계적 관계망을 구축해 왔다.
특히 MACBA 관장 재직 당시 현대미술에 대한 독창적인 관점과 모든 문화예술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이 국제 미술계 인사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난해 신임 관장 적임자를 찾으며 국내외 인사들에게 자문을 하는 과정에서도 니컬러스 세로타 영국 테이트미술관 총관장, 베르나르 블리스텐 프랑스 퐁피두센터 관장, 후미오 난조 일본 모리미술관장, 유진 탄 싱가포르국립미술관장 등 해외 유수 미술계 인사들이 그를 국립현대미술관장 후보자로 추천했다.
한국과의 인연은 스페인 MACBA 관장 시절 시작됐다.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한·스페인 60주년 기념 MACBA 소장품전(7월 13일∼10월 3일)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또 2011년에는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삼성미술관 리움과 광주비엔날레 재단이 리움 개관 10주년·광주비엔날레 창설 20주년을 기념해 공동으로 개최한 아트 포럼에 MACBA 관장이자 CIMAM 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바 있다.
서울에는 동년배인 아내 루르데스 이글레시아스(Lourdes Iglesias)와 함께 왔으며 슬하에 자녀는 없다. 마리 관장의 아내 이글레시아스는 이미 2권의 책을 낸 영화 시나리오 작가다.
인터뷰=이경택 부장(문화부)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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