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하나 사이로… 이중섭·김환기 함께 만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환기의 뉴욕시기(1969년) 드로잉. 전면점화의 기법이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환기미술관 제공

자하문로 따라 두 거장 작품 잇단 전시

- 서울미술관 ‘이중섭은 죽었다’ 展
자체소장 17점 4년만에 한자리에… 작가가 살았던 공간 10곳도 재현

-환기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 展
예술 동지 부인 김향안 탄생 100년… 6·25~뉴욕시대 400여점 최대 규모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이중섭(1916~1956)과 김환기(1913~1974)에게도 가족과의 사랑은 창작의 큰 에너지원이 분명했던 듯하다. 봄볕이 가득한 인왕산 자락의 서울 자하문로를 사이에 두고 두 미술 거장의 삶과 예술을 작품과 함께 만날 수 있는 전시가 나란히 열리고 있다.

탄생 100주년(4월 11일)을 맞아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5월 29일까지 열리는 이중섭 전의 전시제목은 ‘이중섭은 죽었다’이다. 신화가 된 이중섭의 일생에서 거품을 걷어내고, 가족을 너무 아꼈고 한 여자를 지극히 사랑한 자연인 이중섭의 인생을 죽음부터 탄생까지 그리고 있다. 전시는 관련 기록을 기반으로 이중섭의 인생을 그가 살았던 공간 10곳을 재현해 보여주고 해당 시기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전시를 둘러보고 나면 이중섭의 고단한 삶이, 작품이 주는 감동과 함께 가슴에 다가온다. 전쟁과 피란의 힘겨운 와중에도 직접 그림을 그려 일본의 가족에게 보낸 그림엽서에는 일본인 부인 마사코는 물론 아들 태현과 태성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절절히 담겨 있다.

생활고로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에 두고 한국에서 작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이중섭이 결국 가족과의 재회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외롭게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숙연한 감정마저 들게 한다. 그의 익숙한 황소그림 등 회화뿐만 아니라 담배은박지에 그린 은지화, 한국어로 번역된 일본의 가족에게 보낸 그림엽서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이중섭이 부산 ‘루네쌍스다방’에서 피란길에 그렸던 은지화를 그의 사후 MoMA(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뒤늦게 진가를 알아보고 부랴부랴 소장품으로 의결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안타까움마저 자아낸다. 서울미술관은 “2012년 개관전 이후 자체 소장한 이중섭 작품 17점을 4년 만에 한자리에서 전시한다”며 “작품 총액가는 20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중섭의 ‘아이들 놀이’ 은지화(9x15㎝)로 연도미상의 작품이다. 서울미술관 제공

서울미술관을 나와 자하문로에 놓인 횡단보도를 건넌 후 200여m 언덕길을 오르면 모습을 드러내는 환기미술관에서는 수화 김환기의 드로잉 등 초기작부터 절정기에 그린 전면점화까지 주요작품 대부분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김환기의 부인이자 예술적 동반자이며 환기미술관 설립자인 김향안(본명 변동림·1916~2004) 여사가 생전에 환기미술관의 의미와 역할을 설명하며 남긴 말이다. 이번 전시에 대해 환기미술관은 김환기의 예술이 갖는 가치와 거장의 예술혼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고군분투한 부인 김향안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김환기와 김향안의 사랑은 지고지순한 사랑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김향안은 시인 이상과 사별한 후 김환기를 만나 생전에는 예술세계를 잘 이해하는 반려자로, 남편의 사후에는 작업을 정리해 소개하면서 자신도 문필가, 화가로서 활동했다. 1979년에는 환기재단을 설립했고, 1992년 우규승의 설계로 환기미술관을 건립했다. 그래서 평자들은 김향안 여사가 없었다면 김환기 예술도 꽃피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환기미술관은 6·25전쟁 당시 피란 시기와 서울 성북동 시절, 파리와 뉴욕 시대 대표작 등 400여 점이 대거 전시되는 최대 규모의 전시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뉴욕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치열한 예술혼으로 완성한 전면점화들과 함께 파리에서 뉴욕을 거쳐 구상에서 추상으로 나가는 시기의 그의 드로잉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전면점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돼 갔는지를 보여주고 있어 김환기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한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