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문화재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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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수 / 논설위원

소를 끌고 가던 노옹이 수로부인을 위해 절벽에 기어올라 철쭉꽃을 꺾은 뒤 ‘헌화가’까지 지어 바친 설화가 ‘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편’에 실려 있다. 1300년 전의 봄, 미인과 노장의 만남이 서정적이다. ‘기이편’에는 이외에도 ‘처용의 노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신비한 피리 ‘만파식적’ 등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현전하는 ‘삼국유사 권2 기이편’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초기 목판본이다. 1999년 한 대학교수 집에서 도난당한 이 목판본이 돌아왔다. 문화재 매매업자인 김모 씨는 이 책을 2000년 입수한 뒤 자신의 집 천장에 15년간 숨겨왔다. 공소 시효가 만료된 줄 알고 지난해 11월 덜컥 경매 시장에 내놨다. 이 판본 도난 사건의 공소 시효는 2009년 끝났다. 하지만 문화재보호법상 은닉죄는 은닉 상태가 종료된 시점인 지난해 11월부터 다시 기산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 수사대는 이 책을 은닉한 혐의로 김 씨를 불구속 입건했고, 책은 원소장자 가족에게 돌아가게 됐다.

이번 사건과 달리, 오랜 시간 적발되지 않고 있다가 공소시효가 완성된 뒤 유통되는 문화재 관련 범죄는 속수무책이다. 일단 절도죄 공소 시효(10년)가 지나면 문화재를 은닉한 사람은 처벌할 수 있어도 애초에 문화재를 도굴하거나 훔친 사람은 처벌하지 못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1985년 이후 문화재 도난 신고 접수는 705건에 달하지만 회수된 것은 고작 30%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의 도난 문화재 목록에는 도난 일자조차 알지 못하는 보물 제569-4호 안중근 의사 유묵과 국보 제238호 ‘소원화개첩’ 등 국보·보물급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문화재는 도난 과정에서 원형이 훼손되거나, 해외로 밀반출되기도 한다. 지난해 3월 국회에서 문화재 절도죄의 공소 시효를 현행 10년에서 25년으로 늘리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19대 국회 임기가 종료(5월 29일)되면 자동폐기될 운명이다.

지난해 7월 살인죄 가운데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 시효가 폐지됐다. 조상의 삶과 얼이 응축된 문화재 절도의 공소 시효도 점차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 사회 공동자산인 문화재는 훔쳐도 차액 거래를 할 수 없고, 궁극적으로는 돈이 안 된다는 인식을 국민 모두에게 심어줘야 한다.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를 찾아오는 일보다 더욱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국내에 있는 문화재를 보존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