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분노·증오 부추기는 위험한 ‘포퓰리스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극우의 새로운 얼굴들 / 리처드 호프스태터, 루이스 세풀베다 등 지음, 이진홍 외 옮김 ／ 르몽드 코리아

유럽 전역에서 극우 정당이 약진하고 예상치 못한 도널드 트럼프 바람으로 미국에서도 새로운 파시즘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극우의 새로운 얼굴들’은 매우 시의적절한 책이다. 책은 프랑스 시사 월간지 ‘르몽드 디클로마티크’ 자매지인 ‘마니에르 드 부아’ 2014년 4·5월호 ‘극우의 새로운 얼굴들’을 중심으로 이 문제에 관한 최근 글까지 묶은 것이다. 프랑스 정치학자 세르주 알리미, 칠레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 미국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 등 쟁쟁한 필자 30여 명이 참가해 1980∼1990년대에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해 맹렬한 기세로 퍼져나가고 있는 극우 정치와 그 이면을 분석했다.

파리 테러 등으로 ‘이슬람 공포’에 떨고 있는 프랑스, 최근 대선에서 극우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가 선전한 오스트리아, 헝가리, 노르웨이, 그리스 등 유럽국가는 물론 칠레, 인도, 이스라엘 극우파, 이슬람권 파시즘과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역사 수정주의까지 두루 살핀다.

책의 출발점은 제목에서 찾을 수 있다. 극우의 새로운 얼굴들(Nouveaux visages des etremes droites). 현재 전 세계에서 약진하고 있는 극우는 전통적 극우와 다른 낯선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을 여성인 마린 르펜이 이끌듯 강한 남성에 대한 마초적 숭배를 기반으로 한 기존의 극단적 보수주의자 소굴이 아니다. 오랫동안 기독교 윤리로 지탱되던 보수적 단체들이 동성애자 권리 수호에 나서고 동성애자가 극우 단체의 대표가 되고 있으니 이 또한 예전과는 다르다. 유럽 극우파의 대표적 정서인 반유대주의도 9·11 이후 이슬람 공포라는 새로운 상황과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에 따라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로 바뀌었다. 게다가 개별 국가마다 세계화, 민족국가, 보호주의, 복지국가, 공공서비스, 대미관계 등 여러 문제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보인다. 상황에 따라서는 극우 정당이 진보 좌파 정권과도 연정을 구성하고 유권자의 인기를 끌기 위해 좌파 정책까지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니 대중의 입맛에 소구하는 ‘새로운 얼굴’이다.

하지만 책에 담긴 여러 편의 글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21세기 극우파의 공통분모는 이렇게 요약된다. 신자유주의 시스템과 경제위기-박탈감과 소외-증오심-포퓰리즘이라는 사이클이다. 먼저 신자유주의 시스템과 경제위기가 불러온 빈부격차와 실업 등으로 중산층이 붕괴 되고, 기존의 중산층까지 포함된 소외된 계층이 외국인, 이민자, 난민 등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운다. 이어 인기영합적 정치인들이 이를 부추기면서 극우 사이클은 돌아간다. 극우 정치인들은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도 하고 “내일부터는 모든 게 공짜”라거나 “세금도 낼 필요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는 한편 유권자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기 위해 민족적 종교적 분열과 대립을 부추긴다. 이 사이클의 속도를 더 높이는 데는 엘리트 정치인과 지식인의 무능력·무기력도 한몫한다.

예를 들어 헝가리에서는 공산 정권이 무너진 뒤 자유시장 경제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실질 임금과 일자리가 급감하면서 국수주의적 우파 정권을 낳았다. 이들 헝가리 극우파들은 모든 문제를 소수 민족인 롬족과 집시 탓으로 돌려버렸다. 그리스의 극우정당 황금 새벽당이 갈수록 세력을 확대하는 것 역시 그리스의 경제문제 때문이다. 북유럽의 대표적 복지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삶의 질이 높은 곳으로 꼽히는 노르웨이에서 극우 성향의 진보당이 등장하고 극단주의자의 반이슬람 테러가 일어나는 것 역시 사회적 불평등과 임금 격차가 증가하면서 중·하위층이 자신들이 이룬 부를 이민자들이 빼앗아갔다고 생각하면서 벌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책은 국수주의 극단주의, 외국인에 대한 혐오 정서가 스포츠, 문화 등을 통해 어떻게 확산하는가도 다룬다. 프랑스 스포츠 연구원 파트리크 미뇽은 ‘축구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인종 차별과 폭력사태’에서 포퓰리즘이 확산하고 극우파 정당이 득세하면서 유럽 축구장이 어떻게 거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특별한 장소가 되고 있는지 분석한다. 특히 가난하고 열성적인 젊은이들이 모이는 골대 뒷자리인 ‘엔드’ 구역에 주목한다. 유사한 삶의 경험과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임시 공동체를 만들면서 ‘엔드’가 극단적 주장, 인종차별적 감정을 폭발시키는 곳이 됐다는 분석이다.

미국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극우파 이면에 자리한 편집증적 담론을 분석한 부분도 흥미롭다. 그는 오늘날 극우파들은 우리 삶을 훼손하고 파괴하려는 거대하면서도 섬세하게 조직된 적을 상정한다고 했다. 이들 편집증적 담론의 신봉자들은 역사는 초월적인 세력이 꾸며낸 음모로 이들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십자군 전쟁에 버금가는 저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택광 경희대 교수 등 국내 필자의 글도 더해 넷 우익과 일베 등 우리 상황도 살핀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