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비대화하는 立法권력, 이대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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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지난 제19대 국회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최악이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5년 실시한 ‘사회통합 및 국민행복 인식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17.4%만이 입법부(立法府)를 ‘신뢰한다’고 답해 조사 대상 13개 기관·단체 가운데 입법부의 신뢰도가 가장 낮았다. 국민의 불만은 한 일간지가 올 초에 실시한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확인됐다. 33만 건의 정치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문제’가 있어 ‘개혁’이 필요하지만 ‘한심’하게도 ‘잘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민의 이 같은 분노가 표출된 것이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놀라운 듯 놀랍지 않은 결과였다.

그러면 20대 국회는 달라질 것인가? 성급한 예단은 금물이지만,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헌법 제46조 제2항의 규정대로 국회의원이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면 달라지겠지만, 20대 국회의원들이라고 갑작스레 환골탈태할 가망은 별로 없다. 첫 번째는 국회의원 개개인의 됨됨이다. 20대 국회의원 가운데 92명이 전과를 가지고 있다. 이 정도면 보통 사람에 비해도 결코 반듯하다고 할 수 없다. 이 가운데는 반국가활동 전력으로 처벌을 받은 의원도 49명이나 된다. 과연 이들이 얼마나 개인적 이득이나 특정 이념과 집단을 넘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생각할지 의심스럽다.

이와 더불어 제도적인 유인 구조도 국회의 변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 음울한 진단의 첫 번째 증거가 원(院) 구성 과정에서 보이는 상임위원장 나눠 먹기이다. 여당의 경우 20대 국회 의석이 주는 바람에 3선 이상 의원의 수에 비해 상임위원장 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게 되자 상임위원장 임기를 쪼개어 두 사람이 1년씩 맡게 했다. 상임위원장의 직위(장관급)와 중요성에 비춰 무엇보다도 임무 적합도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지만 선수(選數)만 따지고 있다. 이것은 국회의원들이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 임무 적합도는 물론이고 개인적인 일까지 시시콜콜 따지는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고물이 많은 떡이니 무조건 같이 나눠 먹자는 식이다.

사실 소선거구제 아래서 선수가 많다는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국익(國益)보다는 지역의 민원이나 예산을 챙기는 데 더 열심이었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다. 국리민복과 무관한 활동을 하더라도 계속 재선만 되면 당직도 차지하고 국회직에도 나아갈 수 있다. 선수만을 주로 고려하는 현재의 국회직 충원 방식은 문제가 있다.

국회는 현재 제도적으로 거의 무소불위(無所不爲)의 권한을 누리고 있다. 1987년 헌법은 당시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인사 동의권, 예·결산 권한과 국정조사 및 국정감사 등 행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많은 견제 장치를 도입했다. 반면에 국회 해산권 등 국회에 대한 감시와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데는 소홀했다. 최근 국회는 입법권을 남용해 이런 권한을 더욱 확대하려 기도하고 있다.

16대 국회에서 인사청문회가 도입될 때는 헌법상 국회 동의가 필요한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 13인 및 국회가 선출하는 헌법재판관 3인, 중앙선거관리위원 3인에 대해서만 청문회를 시행했다. 하지만 시행 과정에서 이것이 대통령의 권한을 제약하는 요술 방망이임을 깨달은 국회는 슬그머니 관련법을 개정해 인사청문회 대상을 대폭 확대했다. 그 결과 대통령은 사람 하나 쓰기도 어렵게 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해에는 행정부가 제정하는 법률의 시행령에 대해서도 수정을 권고할 수 있도록 국회법 개정을 시도했다. 19대 국회 마지막 날에도 상임위가 소관 사항에 대해 상시적으로 청문회를 열게 하고, 헌재의 판결을 심사하고, 민원을 국민권익위원회에 넘겨 처리케 하는 등을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모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실패했지만, 약체화한 행정부와 비대화한 국회의 관계를 보여준 사건으로, 입법을 통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국회의 입법 만능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국회의원들이 이렇게 제약되지 않은 제도적 권력을 사적 이익(私的利益)과 정파적 목적을 위해 사용할 우려는 언제나 존재한다. 하지만 이 제도를 고치는 것도 국회의원들에게 맡겨져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제도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남 눈의 티끌만 볼 게 아니라, 제 눈의 대들보도 보는 국회의 자성(自省)을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