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연습 때면 늘 ‘잘한다’ 칭찬… 한눈 안팔고 ‘소리 길’ 걷게 했죠”

‘대장금’국악인 박애리의 나를 만든 스승

“워메, 이 애기 소리해야 쓰겄네. 뭔 애기 목소리에 ‘애원성(哀怨聲·슬프게 원망하는 소리)’이 들었다냐.”

2010년 공연예술가 팝핀현준과의 결혼,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곡 ‘오나라’로 이름을 알리면서 ‘국악계의 이효리’로 불리는 박애리(39·사진) 명창. 그가 지난 1985년 목포시립국악원에서 춘향가의 한 대목을 부르자 안애란(74) 명창이 무릎을 치며 이같이 말했다.

동네에서 노래솜씨 좋기로 소문났던 박 씨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찾아갔던 국악원에서 안 명창을 처음 만난 이후 30여 년간 모녀지간에 버금가는 사제(師弟)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달 27일 남편이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대흥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 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다. 지난 2014년까지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박 씨는 전남무형문화재 판소리 동편제 춘향가 예능 보유자인 안 명창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 보유자인 성우향 명창으로부터 소리를 배웠다. 안 명창은 성 명창의 제자다.

박 씨는 안 명창을 어머니처럼 여긴다. 거기에는 애틋한 사연이 있다. 박 씨는 “지난 2003년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립창극단의 춘향전 공연에서 주연으로 춘향이 역할을 맡았는데, 첫 공연 전에 안 선생님이 잔치 떡을 수북이 싸들고 목포에서 서울까지 올라오셨다”고 회고했다. 박 씨 어머니께서 살아생전 박 씨가 극단에서 주연을 맡을 때마다 목포에서부터 산 낙지와 홍어 등 잔치음식을 해오던 것을 기억하고 있던 안 명창이 어머니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박 씨는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선생님을 보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국악계에서 제자들을 살뜰히 챙기는 것으로 이름난 안 명창은 박 씨를 유독 애틋하게 대했다. 박 씨 역시 안 명창을 어머니같이 믿고 따랐다. 박 씨의 어머니가 생전 “내가 죽고 없으면 안 명창을 어머니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당부할 정도였다.

박 씨는 안 명창의 남다른 애정으로 국악에 입문한 이래 한눈팔지 않고 외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 씨는 “선생님은 ‘애리는 소리가 금방 늘 것이다’ ‘애리는 참 똑똑하다’는 칭찬을 자주 해주셨었다”며 “칭찬 때문에 연습을 게을리할 수도, 한눈을 팔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안 명창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박 씨의 형편을 알고는 수업료도 거의 받지 않았다고 한다. 박 씨는 “말단 공무원인 아버지 월급으로 5남매를 기르는 어려운 집안 사정을 아셨는지, 선생님은 수업료도 거의 받지 않으셨다”며 감사해 했다.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못해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첫 월급을 탔을 때 허리가 아픈 안 명창에게 침대를 선물하기도 했다.

박 씨는 목포를 떠나 대학에 진학해서도 힘이 들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 다음으로 안 명창을 찾았다. 그는 “고향에 내려가서 시간이 없어 친구들은 만나지 못해도 선생님은 꼭 찾아뵀다”며 “스승의 날에도 선생님을 찾아뵙지 못하면 전화로라도 스승의 노래를 꼭 불러드리는데 그때마다 선생님께서는 소리를 죽여 우시곤 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국악계의 유명인사가 된 박 씨도 안 명창과 같이 중앙대에서 후학양성에 여념이 없다. 박 씨는 안 명창과 같이 훌륭한 스승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은 수업료 없이도 소리를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선생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스승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사진=김선규 기자 uf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