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치료·캘리그래피… 문화로 소통할 사람 모여라 !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도예가 엄기성 씨가 진행하는 문화예술 소셜 다이닝 프로그램에서 문예지기와 참가자들이 함께 커팅 보드를 만들고 있다. 문화융성위원회 제공

문체부 - 문화융성위 ‘문화예술 소셜 다이닝’ 호응

“도자기를 만들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지인의 소개를 받았는데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지난 7월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작은 건물 지하, 젊은 도예가 엄기성(29) 씨의 작업실에서 흥미로운 모임이 열렸다. 30대 여성 4명이 그의 도움을 받아 자기만의 개성 있는 커팅 보드와 작은 소스 볼을 만들고 있다. 도자기 만들기는 처음이지만 모두 어렵지 않게 밀대로 흙을 얇게 밀어서 판을 만들고, 반듯한 판을 잘라 자기만의 모양을 만들었다. 이어 소스 볼까지 완성했다.

다음은 유약을 선택할 시간. 엄 씨는 유약이 굽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어떤 색깔이 나는지를 설명하고 커팅 보드와 소스 볼 모양·특징에 어울리는 유약을 권하기도 했다. 선택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자신의 ‘작품’에 이니셜을 새겼다. 이렇게 2시간가량 이어진 수업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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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과정만 보면 요즘 유행하는 원데이(1-Day) 수업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는 흔한 원데이 수업이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 융성위원회가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진행하는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한 ‘문화 예술 소셜 다이닝(Soical Dining)’ 프로그램이다. 비슷한 문화적 취향과 예술적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무엇인가를 함께 만들고 같이 향유하면서 문화를 매개로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시간이다. 일정한 기준에 따른 선정 과정을 통해 뽑힌 문화·예술인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서 믿을 수 있고, 재료비 등이 지원되기에 훨씬 알뜰하고 경제적이다.

지난 5월부터 매달 1회씩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엄기성 씨는 “일반 수업의 경우 강사는 가르치고, 참가자는 배우는 일방적인 관계인 데 비해 소셜 다이닝은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구들이 모여 무엇을 같이 만드는 것 같은 매우 친밀한 시간이라는 점이 다르다”며 “나 자신도 강사라기보다는 또 다른 참가자 중 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회사를 이직하는 사이에 잠깐 쉬고 있다는 한 여성 참가자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라서 말도 잘 통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집중해 뭔가를 만들다 보니 스트레스도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소셜 다이닝에 문화 예술을 접목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식사 문화인 ‘심포지온(Simposion)’에서 유래된 소셜 다이닝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 식사를 즐기며 인간관계를 맺는 새로운 소통방식이다.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SNS가 일상적인 소통의 채널이 되면서 새롭게 등장한 문화이다.

소셜 다이닝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2012년 5월 문을 연 ‘집밥(www.zipbob.net)’ 같은 소셜 다이닝을 매개로 한 비즈니스 모델도 등장했다. 문화가 있는 날 문화 예술 소셜 다이닝도 집밥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고, 참가 신청을 받는다.

문화예술 소셜 다이닝은 젊은 문화·예술인 지원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문화예술 전공자들을 상대로 일정한 심사 과정을 거쳐 뽑은 ‘문예지기’가 모임을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아직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충분히 활동하지 못하고 있는 젊은 문화예술가들, 경력이 단절된 문화예술가들 혹은 창업준비생들을 문예지기로 뽑아 모임을 통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도예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엄 씨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창업을 준비 중인 예비 창업인이라면 캘리그래피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문예지기 전현영 씨는 결혼으로 경력이 단절된 경우이다. 그에게 이 프로그램은 새로운 출발의 계기이다.

청년 혹은 예비 예술가뿐 아니라 이미 전공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자신의 전문 분야를 넘어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자신의 문화예술적 콘텐츠를 나눠주고 싶은 이들도 있다. 오랫동안 방송작가로 일한 뒤 현재 연출가와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윤수진 문예지기가 그런 케이스이다. 윤 씨는 “연극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개개인이 건강해지도록 돕기 위해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문예지기는 이들을 포함해 13명이다. 분야는 도예부터, 전통 소품 만들기, 캘리그래피, 연극 치료, 동양화, 재즈 공연, 영화 평론 등 다양하다. 이들 문예지기 13명은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 총 54회 모임을 개설했다. 이제까지 400여 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문체부는 오는 8월 중순에 2기 문예지기 20여 명을 모집할 예정이다. 이들 문예지기에게는 공간 임차료, 재료비 등 활동비가 지원되고 모임 운영을 위한 교육 및 개인 브랜딩 교육을 위한 워크숍 등이 제공된다.

모임에 참가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소셜 다이닝 전문 중개 사이트 ‘집밥’을 통해 소정의 참가비를 내고 참가할 수 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