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학생들의 ‘극단적 선택’ 막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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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주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아이가 도무지 미래에 대한 생각이 없어요. 공부도 하지 않고 학교도 안 가려 하고 맨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어요.”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외래에서 흔히 듣는 어머니들의 호소다. 아이와 면담을 해보면 십중팔구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고, 실제 자해나 극단적인 시도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부모들은 이러한 아이들의 감정과 생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며 심지어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개인의 인생에서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각각의 인생의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타인의 관점에서는 별것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헤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 마지막 순간까지도 누군가가 자신을 붙잡아 주기를 기대하면서 많은 위험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이와 같은 짧은 사례에서도 희망 없음, 무기력, 등교 거부, 극단적 생각, 극단적 행동 등 ‘위험 신호’가 꽤 많이 보인다. 막상 우리 자녀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부모들은, 아이가 느끼는 절망감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하기보다는, 일시적인 것으로 무시하거나 야단을 치거나, ‘괜찮을 거야, 너는 뭐든지 잘할 수 있어’ 하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일 학교에서도 주변인처럼 느껴지고 감정을 같이 나누고 위로를 받을 만한 친구나 가족조차 없다면 흔한 드라마처럼 씩씩하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보편적인 청소년일까? 어쩌면 보편적인 청소년들은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이나 게임에 몰두하면서 절망적인 상황을 잊어버리려고 할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자신을 위로해 주는 끈이 떨어졌다고 생각할 때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다.

매년 약 10%의 학생이 죽음을 생각하고, 3%의 학생은 실제 이를 행동으로 옮기고, 약 100명의 학생은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하고 실제로 잘못된 길을 선택한다. 주변에서는 일상적인 소소한 갈등이 있었을 뿐, 극단적인 선택을 유발할 만한 큰 충격이 없어 너무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했다는 반응이 많다. 그러나 되짚어 살펴보면 우리의 아이들은 수없이 많은 위험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주변에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과연 우리는 살아가는 이유와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봤을까? 그저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살아왔으면서 이런 질문을 하는 자녀들에게는 기계적으로 어른들의 삶을 강요한 건 아닐까?

인생이라는 것은 뭔가 거창한 것을 성취해야만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개개인이 소중하고 귀하며 고유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또한,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경험하게 될 세상은 어른들이 경험한 세상과는 다를 것이다.

신학기가 시작될 때 극단적 선택을 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모든 학교에서 2학기에는 생명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고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도와주기 위해 생명존중 교육주간을 설정, 집중 상담을 한다. 가정과 학교에서도 예민하게 아이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절망감을 느끼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아이들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들의 감정에 공감해 주며 잘 들어 주는 것이다. 당황하거나 놀라지 말고 차분한 태도로 대화하되 지시하거나 교육할 필요는 없다. 꼭 해답을 제시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해가 안 될 때에는 혼자 속단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된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회복력이 강하다. 그래도 학생들의 마음이 잘 이해되지 않고 염려된다면 전문가를 찾아가는 걸 주저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