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외모 꾸미기는 본능 아닌 ‘진화된 억압’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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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실에 직면하라.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당신의 피부에 일어나고 있다.”

화장품 회사 광고다. ‘삶의 현실’이라? 그럴 듯해 보이지만, 피부가 진짜 문제는 아니다. 물론 여성에 대한 공격은 일상적이다. 그러나 피부만 방어해선 아무 소용이 없다. 저자는 여성의 관심을 미용에 집중시키는 사회적 기제가 오히려 진짜 문제라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도 전혀 자유롭지 않다. 성폭력, 성희롱, 적대적 직장 문화, 가사 노동, 육아 걱정 등이 곳곳에서 여성을 괴롭히는 데 덧붙여 성형수술과 다이어트, 피부 관리와 피트니스 등으로 나타나는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이 여성을 전면적으로 공격한다.

부끄럽지만 아마도 필자 역시 가볍든 무겁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분명히 그 공격에 참여했을 것이다. 책을 읽어갈수록 혹시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여성들한테 용서부터 빌어야 간신히 이 글을 써 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한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같이 살아가면서도, 여성이 더 많은 공격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신경 써야 하는 스트레스를 덧붙여 받는 것, 이게 바로 ‘현실’이다. 이 현실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우리는 모두 ‘여성 혐오자’들이다.

여성은 세상의 억압을 여러 번 넘어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왔다. 가정의 사슬을 끊고 직업 노동의 현장으로, 온갖 성적 차별의 벽을 뚫고 유리 천장을 깨뜨렸다. 간난과 신고를 낳는 어떠한 역풍도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전혀 가로막지 못했다. 끈질긴 인내와 단단한 연대로 여성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켰다.

하지만 대통령이 여성으로 바뀐다고, 여성을 둘러싼 모든 사회적 문제가 마무리되는 건 아니다. 미국에서조차 여성은 같은 일을 하고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며, 흔히 승진에서 누락되어 조직을 이끌 지위를 얻을 수 없고, 온갖 명시적 차별의 공공연한 희생자가 된다. 싸구려 봉건 유교 시절의 지난 압박에 시달리는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눈뜨는 것은 분명히 피부의 현실을 인지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010년 28세의 나이에 거식증으로 사망한 프랑스 모델 이자벨 카로.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에서 저자 나오미 울프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의 진화를 이야기한다. 여성이 삶의 현실을 직면하지 못하고 신체의 상태에 집착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이라는 새로운 종교를 폭로한다. 이 종교의 사제는 성형외과 의사나 피트니스 트레이닝 코치 등이다. 성모(聖母)는 가슴 큰 말라깽이 슈퍼모델이나 연예인, 복음서는 미용 관련 광고로 도배된 여성지다. 옛 종교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이라는 신흥종교에서도, 신자인 여성은 스스로의 말씀을 내면의 참된 진리로 받아들이고 고된 노동으로 벌어들인 돈을 구원을 위해 갖다 바치는 자발적 광신도가 된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성형님! 주름져서 죄송합니다, 화장품님. 살쪄서 죄송합니다, 식품님. 몸매 나빠 죄송합니다, 트레이닝님…….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남성은 거의 느끼지 못하는, 여성의 자존감을 무너뜨려 쪼그라들게 하는 유죄 목록들. 여성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자존심이 모든 것을 불태우는 심리적 법정에서 일어나기에, 즉 고백의 형식을 취하기에 이 판결에 항소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항의가 곧 자기 육체에 대한 무책임, 자기관리의 실패에 대한 치욕적 승인으로 비칠 수 있는 까닭이다(그래, 나 추녀다!). 그래서 차라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력자본’을 확보해 출세의 무기로 쓰자고 나서는 게 솔직해 보일 정도다(성형 안 하면 취직 못 해요).

‘미인’이라는 존재를 특권화하는 모든 시도는 여성에 대한 억압을 당연시하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게 생식의 유리함 같은 생물학적 이유든, 아프로디테 같은 신화적 설명이든, 아름다운 여자들에 대한 역사적 증거든 말이다. 설령 미인에 대한 어떤 존중이 있었더라도, 그것은 창녀 등 과거에는 특정 부류의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자질이었지, 나머지와 아무 관련 없는 일이었다. 나오미 울프는 아름다움에 대한 현대적 강박은 여성의 전면적 사회 진출과 동시에 생겨났다고 말한다.

“아무리 해도 끝이 없고 해도 또다시 해야 하는 집안일”이 “아무리 해도 끝이 없고 해도 또다시 해야 하는 아름다움을 위한 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산업 혁명과 함께 노동에 대한 요구가 육체적 힘이 약화되는 쪽으로 바뀌면서 사회 모든 영역에 여성이 공정하게 참여할 기회가 늘어나자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을 통해 ‘여성의 의식을 식민지로’ 만듦으로써 억압을 재생산하고 불평등을 교묘하게 유지한 것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질 무렵에 한국에서도 다이어트가 일상화하고 성형 열풍이 일어난 걸 떠올리면 저자의 혜안이 놀라울 따름이다. 초판이 나온 지 벌써 스물다섯 해나 지났지만, 이 ‘전설의 책’은 우리의 의식이 여전히 기울어져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저자의 의도가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었다면, 그 시도는 분명히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장은수 출판평론가·순천향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