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국회 예산심의, 政治매몰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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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이화여대 교수 행정학

내년 국가 지출 규모가 처음으로 400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국가채무도 682조7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여 여야(與野)를 넘어서 좋은 예산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예산국회’라고 하지만 국민에게 비치는 국회의 모습은 여전히 내년 대통령 선거를 위한 정치(政治) 싸움에 영일이 없어 보인다. 총량을 다루는 거시재정 운용의 방향 모색과 꼭 지원해야 할 사업과 낭비 내지는 불요불급한 사업을 가르는 치열한 논쟁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2006년, 기존의 예산회계법과 기금관리기본법을 통합해 건전하고 투명하며 성과 지향적인 국가재정법이 제정됐다. 매년 한 해 살림에만 집중하던 예산 집행을 국가재정운용계획으로 변경해 5년 단위의 중기재정 위주로 나라 살림을 운용하도록 하는 재정 개혁이 이뤄진 것도 10년이 넘은 것이다. 2060년까지의 국민 부담을 추계하는 장기재정 전망도 제공되고 있어 세대를 넘어선 편익과 부담을 놓고 공방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 부담과 지출 분야 및 규모를 결정하는 국회의 예산심의 과정은 구태의연하게 정치적인 공방으로 밤낮을 보내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9월 예산국회가 열리고 나서도 국정감사로 한 달 이상을 보내고 헌법에 명시된 예산심의 시한인 12월 2일까지는 이제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정작 본격적인 예산심의는 이번 주에 시작한 상황이다. 400조 원에 이르는 살림을 6주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심의해 확정해야 한다.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17년도 예산안은 확장적 재정 운용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2016년 11조 원 규모로 추가경정예산을 통과시킨 것이 지난 9월 1일이었음을 고려하면 내년도 본예산에는 이러한 추가경정예산 효과를 감안해 편성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정부도 재정(財政) 건전성과 경기(景氣)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한다는 고민을 읽을 수 있지만 이러한 판단이 적절한지에 대해 사계의 전문가들과 함께 거시재정 총량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해야 한다.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재정정책이 아니라, 확실한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재정지출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도 국회의 면밀한 예산안 심사가 필요하다. 향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세입 기반을 확충하고 지출 구조조정의 투명성을 제고하며 재정 건전성 제고를 위한 합리적인 제도적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노력이 예산안에 담겨야 한다. 지출 구조조정을 위한 유사·중복 사업의 통·폐합은 부처를 넘어선 것을 목표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 2017년도 205개 통·폐합 사업 중 부처 간 사업 통·폐합 사례는 23개에 불과한 만큼 성과 지향적 프로그램에 대한 보다 전향적인 예산심의를 주문한다.

예산을 집행하는 행정부 입장에서는 제 살을 깎는 보조금 개혁, 기금 통·폐합, 공공기관 기능 조정 등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은 재정학이나 공공선택론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자연스러운 행태로, 견제와 균형은 입법부의 몫일 수밖에 없다.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지원되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 교부금 배분도 환경의 변화와 그간의 성과를 고려해 정부 예산안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일하는 국회, 생산성이 높은 국회를 원한다. 국민이 세금을 내고 싶을 정도로 나라 살림을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진정한 예산심의 과정을 보고 싶다. 예산 권한은 실천을 통해서만 확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