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전기료 개편, 합리성·체계성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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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준 경희대 교수 경영학

지난 15일 당·정 태스크포스가 주택용 누진제 완화를 골자로 한 전기요금 개편안을 제시했다. 지난여름 폭염보다 더 국민을 짜증 나게 했던 기존의 6단계, 최대 11.7배에 이르는 누진율을 3단계, 3배 이하로 낮춘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 개선안을 내놓았다. 가혹한 징벌적 누진율을 완화한 개편안이란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오랜만에 마련한 전기료 개편안이 갖춰야 할 합리성·체계성·공감성이 부족한 땜질 처방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욱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하며 국민을 만족시킬 만한, 보다 충실한 개편안으로 보완해야 할 것이다.

합리성의 측면에서 전기료 결정의 근거와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고 소비자가 흔쾌히 수용할 수 있는 전기료 결정 방식을 제시해야 한다.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결정 기준은 원가·경쟁자·고객이라는 3가지로 집약된다. 따라서 상품시장의 특성, 조직의 경영 목적, 정책적 고려 요소 등을 감안해 ‘원가 지향적’ ‘경쟁자 지향적’ ‘고객 지향적’인 가격 설정 중 적절한 방식을 택하게 된다.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기업의 경우 상품시장의 특성과 경영 목적이 주요 영향변수지만, 한전처럼 공공성이 높은 조직의 경우 에너지·환경·산업 정책 및 국민 편익 등에 관한 정책적 고려도 주요 영향변수가 된다.

전기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며 공급자 측면에서 독점시장이어서 경쟁자 지향적 가격 설정 여지는 없다. 따라서 원가 지향적이며 고객 지향적인 가격 설정이 합리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전기의 생산원가와 한전의 수익 구조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전기를 생산·유통·관리하는 데 드는 원가를 산정, 공개하며 여기에 합리적인 수준의 마진을 추가해 가격을 결정하는 원가 지향적 가격 결정 체계가 필요하다. 아울러 시간대별·계절별 요금제, 선납금제, 기간별 납부, 사용량별 계약제 등 소비자의 다양한 수요 패턴을 고려한 소비자 지향적인 요금 결정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체계성의 측면에서 이번 전기료 개편안은 주택용만 대상으로 한 임시방편적 성격이 강하다. 오랜만에 마련하는 전기료 개편안인 만큼 차제에 주택용·산업용·교육용 등 모든 용도의 전기료를 대상으로 에너지 정책, 환경 정책, 산업 정책 및 국민 편익을 고려해 보다 체계적인 개편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일반 국민은 가정용 전기료에 비해 산업용 전기료는 더 인상할 여지가 있다고 하는 반면, 산업계에서는 최근 산업용 전기료가 급격히 인상돼 오히려 적정 수준을 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용도별 원가를 공개하고 형평성과 체계성을 갖춘 종합적인 개편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끝으로, 공감성의 측면에서 기후변화 및 국민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따른 전기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징벌적 누진제를 지속해 온 정부가 실책을 인정하고 국민에 대한 사과를 구하는 절차가 병행될 때 개편안의 공감성이 확보될 수 있다. 당초 현실과 동떨어진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에 대한 국민의 원성이 드높았음에도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의 초기 반응은 기존 요금제 고수였음을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더운 여름 노약자가 있는 가정에서 비싼 전기료 걱정에 에어컨 구입과 사용을 주저하는 반면, 일부 유통점 등에서는 출입문을 열어 놓은 채 에어컨을 켜는 것과 관련해 산업용 전기료가 싸기 때문이라고 보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정부는 개편안 마련과 (對)국민 소통에 있어 공감을 더 높이도록 노력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