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최순실사태’로 국정화 동력 상실… 경쟁체제로 ‘생존’ 모색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국정화 반대” 충북 청주시 학교학부모연합회 회원들이 24일 정부세종청사 내 교육부 앞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 촉구와 불매운동 선언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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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 철회방침 배경

‘국정화찬성’여론 19% 불과
교총 등 보수진영도 등돌려
강행해도 교실서 거부 우려

“올바른 교육 위해 만든 것”
2년간 노력 폐기될 위기에
‘내용으로 평가’ 고육지책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사실상 철회를 포함한 전략 수정을 검토하게 된 계기는 역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가 25일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방안을 내놔도 ‘최순실 프레임’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힌 데서도 이 같은 위기의식이 드러난다.

국정 역사교과서가 아무리 정당하게 추진된 정책이고, 잘못된 기존의 역사서술을 바로잡았다고 해도, 현 시국처럼 박근혜정부에 대한 국민 불신과 실망이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논의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더 근본적으로는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인 교육정책이 제대로 된 논의를 거쳐 수립되지 않으면 미래 꿈나무인 청소년들의 역사교육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교육 철학’의 고민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정책 추진동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상황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을 강행할 경우 국민적 저항에 자칫 교육부 조직 자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고려사항이 됐다. 국정 교과서 검토본이 공개되기도 전에 ‘최순실 교과서’로 낙인 찍힌 상황에서 국정 교과서에 대한 여론지지도 급속도로 떨어졌다. 리얼미터와 CBS가 지난 23일 성인 남녀 5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국정 역사교과서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19.9%에 그친 반면, 반대 의견은 60.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에 조사했던 결과(찬성 42.8%, 반대 52.6%)와 비교해도 차이가 확연하다.

교육 현장에서도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크게 높아졌다. 지난 11일에는 전국 102개 대학 역사·역사교육학과 교수 561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 역사교과서 발행을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동안 국정 역사교과서에 찬성해 왔던 보수단체도 등을 돌리고 있다. 전국 16만 명의 초·중·고등학교 교원을 회원으로 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지난 12일 대의원회를 열어 국정 역사교과서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대표적 보수단체인 교총은 그동안 국정 역사교과서에 조건부 찬성 입장을 보여왔다.

이런 여론 악화 때문에 국민이 국정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보지도 않고 무조건 반대하는 상황을 교육부는 우려하고 있다. 지난 2년여간 공들여 온 작업이 제대로 평가도 받지 못하고 국정 역사교과서가 ‘최순실 교과서’로 낙인 찍힌 채 수장될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최순실(60) 씨의 딸 정유라(20) 씨에 대한 입학 특혜 등을 지켜본 청소년들의 분노가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로 이어지고 있는 점이 교육부가 전략 수정을 검토하게 된 주된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에 대한)학생들의 여론 심리가 있다”며 “SNS에 표출된 학생들의 분노를 보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잘못하면 교육 현장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국정 역사교과서를 처음부터 ‘사산아’로 만드는 것보다는 일단 살려놓은 뒤 국민을 설득해 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게 교육부의 판단이다. 지금과 같은 국민 여론에서는 국정 역사교과서가 발도 못 붙이고 ‘매질’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신 교육부 관계자는 “국정 역사교과서는 어디까지나 학생들의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 만든 것”이라며 “질과 내용으로 다른 교과서와 경쟁을 벌이겠다”고 강조했다. 만일 국정 역사교과서를 기존 일정대로 강행하다가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면 교육부가 이를 버텨낼 수 있느냐도 심각한 고려사항이 됐다. 국정 역사교과서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고립무원’인 교육부가 이를 감내해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